이인제 "盧風 불자 팽 당했다"

  • 입력 2002년 4월 9일 18시 32분


김대중(金大中) 대통령과 민주당 이인제(李仁濟) 후보 간의 정치적 인연은 ‘악연’으로 시작됐다. 97년 대선 당시 이 후보가 한나라당에서 탈당, 독자 출마한 직후 여론조사에서 높은 지지율을 기록하자 DJ의 국민회의는 한나라당과 함께 ‘YS의 이인제 200억 지원설’을 주장했고, 이 후보의 영남 지역 지지율은 60%에서 30%대로 급락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 후보는 영남에서 25%의 지지율을 기록하는 등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후보의 표를 잠식함으로써 DJ의 당선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DJ의 국민회의와 이 후보의 국민신당은 98년 9월17일 합당했다. 그리고 2000년 1월21일 민주당 창당 직후 DJ는 이 후보를 16대 총선 선거대책위원장으로 지명했다. 이 후보는 민주당의 ‘간판’으로 전국을 돌며 충청권에서 8명을 원내에 진출시키는 공헌을 했다.

호남에서 이 후보에 대한 ‘보은론’이 확산됐던 것은 이런 배경이다. 더욱이 DJ의 직할부대인 동교동계의 전폭적인 지원에 힘입어 경선 개막 전까지만 해도 그는 당내에서 부동의 대선후보로 여겨졌다.

실제 DJ는 작년 초 한때 이 후보가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보다 높은 지지율을 보이자 기대를 보였으며, 측근을 통해 “지도자가 되려면 열심히 공부하라”고 격려하기도 했다.

그러나 광주 경선에서 ‘노무현(盧武鉉) 돌풍’에 휘말려 패한 이 후보가 ‘음모론’을 들고 나오면서 두 사람의 관계는 다시 악화됐다. 음모론에 대해 청와대 측은 “얼토당토않은 오해”라고 펄쩍 뛰고 있지만, 이 후보 측은 “이용만 당하고 ‘팽(烹)’당했다”며 노골적으로 반감을 드러내고 있다.

이철희기자 klimt@donga.com

정용관기자 yonga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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