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그에게 기대되는 역할과 그가 실제 수행할 역할 사이에는 시간이 갈수록 간극이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무엇보다 민주당 총재직을 사퇴한 김 대통령은 성공적인 임기마무리를 위해 ‘공정선거 관리’라는 관문을 통과해야 하나, 진념(陳稔) 전 경제부총리의 경기지사 후보경선 출마로 불거진 ‘김심(金心·김 대통령의 의중)’ 시비가 부담이 되고 있다.
민주당 경선과정에서 이인제(李仁濟) 후보 등이 그를 지목하면서 ‘음모론’을 주장한 것도 박 실장의 운신이 생각보다 수월하지 않을 것임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그는 “내가 청와대에 있어야 김 대통령의 정치개입 시비를 막을 수 있다”고 말하고 있으나 그의 비서실장 취임은 역으로 청와대의 정치개입 논란을 증폭시킬 가능성이 큰 게 사실이다.
최근 김 대통령 세 아들의 비리연루의혹과 관련한 야당의 거센 공세도 박 실장 체제의 청와대에 험로를 예고하고 있다. 그럼에도 박 실장의 활동영역은 앞으로 더욱 확대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우선 그는 김 대통령과 여야 대선후보 간의 핫라인 역할을 맡아 김 대통령의 중립의지를 전달하는 기능을 할 것으로 보인다.
또 임기말 흐트러지기 쉬운 관료조직을 추스르면서 김 대통령이 경제회생과 남북관계에 진력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도 그의 역할이 될 전망이다.
박 실장의 임명에 대해 민주당 노무현(盧武鉉) 후보측의 유종필(柳鍾珌) 특보는 “인사권자의 고유권한에 속하는 것이다”고 말했다. 반면 이인제 후보는 “논평할 가치조차 못느낀다”며 강한 불쾌감을 드러냈다. 이낙연(李洛淵) 대변인은 “임기 종반에 필요한 여러 가지를 고려한 인사이다”고 논평했다.
윤영찬기자 yyc1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