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최화경/弘3 고스톱

  • 입력 2002년 4월 18일 18시 25분


전두환 고스톱이 유행하던 때가 있었다. 싹쓸이를 하면 다른 사람들이 먹은 피를 한 장씩 받아오는 게 보통인데 여기선 친 사람 마음대로 골라 가졌다. 광 석 장 갖다놓은 사람이 광 한 장씩 받아오면 바로 5광이 나니 싹쓸이 몇 번 하면 돈 따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거꾸로 싹쓸이하면 오히려 피를 한 장씩 내줘야하는 고스톱도 함께 유행했다. 최규하 고스톱이다. 당시 최고권력자의 명암을 빗댄 이 두 가지 고스톱은 입에서 입으로 퍼져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10·26, 12·12사태로 나라가 숨가쁘게 돌아가던 20여년 전 일이다.

▷고스톱 시리즈는 이어진다. “나 광 없어요. 믿어주세요”하면 다른 사람들이 무조건 쳐야하는 게 노태우 고스톱이고, 같은 패 석 장을 들고 흔들면 다른 사람 패를 미리 볼 수 있는 게 김영삼 고스톱이다. 국민의 정부 들어서는 DJ고스톱이 새로 나왔다. 옆 사람이 먹은 패까지 들고 와 점수를 내는 방식이라니 속셈만 차린 DJP연대를 꼬집은 것일 게다. 치지는 않고 광만 파는 사람을 JP라고 부른다는 대목에선 그 절묘한 비유에 웃음이 나온다. 고스톱 소재는 정치만이 아니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졌을 때는 삼풍 고스톱이, IMF사태로 온 나라가 허리띠를 졸라맸을 때는 IMF 고스톱이 유행했다.

▷우리 국민의 고스톱 열기는 유별나다. 성인 가운데 칠 줄 아는 사람이 90%가 넘을 정도다. 고스톱이 ‘단군이래 최대의 국민오락’이라는 말은 여기서 나왔을 게다. 어디 어른뿐인가. 인터넷 게임사이트에서 가장 북적이는 곳이 고스톱 코너다. 청소년은 물론 초등학생까지 밤잠 안자고 컴퓨터 앞에 앉아 “못먹어도 고”를 외치는 세상이다. 티 없이 맑아야 할 그들의 눈에 역대 대통령이 고스톱 소재로 전락해 희화화되는 세태가 어떻게 비칠지 걱정이다.

▷요즘은홍(弘)3 고스톱이 유행이라고 한다.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세 아들을 빗댄 새 시리즈다. 홍단이 나면 다른 두 사람이 먹은 패를 모두 가져오는 것은 기본이고 그 뒤 3판까지는 져도 돈을 안 낸다니 지금까지 나온 고스톱 시리즈 가운데 위력이 최강이다. 하긴 3형제 모두 게이트 연루설이 나오고, 그중에는 입막음용으로 거액을 선뜻 내놓을 만큼 ‘배포’가 큰 사람도 있다. 그러고도 아직 끄떡없으니 지고도 돈 안 내는 고스톱이라 해도 그리 틀린 말이 아니다. 다음은 무슨 고스톱이 나올까. 그저 웃어 넘기기에는 정말 기막힌 세상이다.

최화경 논설위원 bb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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