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정진영/청와대 변명만 할건가

  • 입력 2002년 4월 23일 18시 19분


대통령의 세 아들과 대통령비서실, 아태재단이 연루된 부패 의혹들이 꼬리를 물고 연일 제기되고 있다. 도대체 부패 스캔들의 끝은 어디이며, 진상은 무엇인가. 경찰청 특수수사과장을 맡았던 최성규 총경은 왜 미국으로 도피했으며, 그를 포함한 부패 연루자들을 계획적으로 해외로 도피시키려 했다는 의혹은 사실인가.

국민은 진실을 알고 싶어하고 있으며, 현 정권의 도덕성에 대해 심각한 의구심을 갖고 있다. 그런데 청와대는 설득력 없는 변명이나 둘러대고 있고, 대통령은 아직까지 아무런 말이 없다. 검찰수사를 지켜보자고 하지만, 지금까지 검찰이 이러한 사건을 조사해서 국민의 궁금증을 속 시원히 풀어준 적이 없다. 신임 이명재 총장의 검찰이 다른 모습을 보여 주기를 기대하고는 있지만 “역시…” 하고 끝날까 우려하는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측근정치-비공식 권력 여전▼

왜 이렇게 대통령의 아들들과 측근들이 연루된 부패 스캔들이 끊이지 않고 반복되는가. 우리는 최근의 사태를 보면서 세 가지 원인을 생각하게 되었다.

첫째, 대통령의 아들들과 비서 등 측근들이 정책을 결정하고 집행하는 데 깊숙이 개입해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대통령은 비서들과 주변 인물들로부터 정책 결정에 필요한 도움을 받을 수는 있다. 그러나 정책 결정자는 어디까지나 대통령이고, 결정된 정책을 집행하는 것은 정부의 공식 기구들이다. 그런데도 어떻게 대통령의 측근이나 이들의 주변 인물들이 권력을 행사하고, 권력을 이용해 검은돈을 챙길 수 있는가. 이러한 일이 가능한 이유는 오로지 그들이 대통령의 주변 인물들이라는 사실 때문이고, 대통령이 그들의 권력 행사를 허용했거나 묵인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통령 주변의 권력형 부패에 대한 궁극적인 책임은 대통령이 질 수밖에 없다.

둘째, 최근의 부패 스캔들에 연루된 청와대, 아태재단 인사들이나 기업인들이 대통령의 아들들과 학연 지연 등의 특별한 연고로 얽혀 있는 측근들이라는 사실이다. 이들은 대통령이 야당 총재를 할 때나 선거를 치르는 동안 아들들과의 친분을 통해 물심 양면으로 도움을 주었을지 모른다. 그리고 대통령이 되고 난 이후에는 그에 대한 보상을 받고 싶어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연고가 대통령의 비서가 되거나 대통령 아들의 주변 인물로서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에 놓이게 되는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

셋째, 아직도 청와대는 우리 사회에서 성역으로 남아 있다는 사실이다. 외환위기를 겪고 난 이후 우리 사회에 유행하게 된 단어 중 하나가 ‘투명성’이다. 투명해야 신뢰를 받을 수 있고 제대로 된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 이러한 분위기 덕분에 우리 사회의 기업이나 공공기관들은 상당히 투명하게 되었다. 정보통신혁명이 큰 기여를 했음은 물론이다. 청와대도 이러한 추세에 동승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청와대는 여전히 국민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고, 그 속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궁금해하는 의문의 상자로 남아 있다. 제왕적 대통령이라 불릴 만큼 권력은 집중돼 있는데, 권력의 행사과정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권력형 부패사건들은 이러한 어둠, 불투명성을 먹고 자란다.

최근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부패 스캔들들이 청와대의 투명성 결여, 연고주의 임용, 비공식적 권력행사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이에 대한 치유책은 분명하다. 청와대가 더 이상 의문의 검은 상자로, 성역으로 남아 있어서는 안 된다. 청와대가 국민의 신뢰를 받기 위해서는 투명해져야 한다. 대통령의 아들이나 비서진의 부패 스캔들을 힘으로 막으려 하면 국민의 의혹은 더 커지기 마련이다. 대통령이 국내 정치에 개입하지 않겠다고 선언해도 국민이 믿지 않으려는 태도를 보이는 이유도 청와대가 투명성이 부족하고, 따라서 국민의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이상 성역 아니다▼

대통령이나 그 아들들의 측근이라고 해서 대통령의 비서로 임용하고 주변에서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에 앉혀서는 안 된다. 권력은 대통령이나 그 아들들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다. 우리 헌법에 따르면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그리고 권력행사가 비공식적으로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이뤄져서는 안 된다. 공직을 담당한 사람들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로서 ‘국민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커져 가는 국민적 의혹을 해소하고 헝클어진 정국을 풀기 위한 대통령의 결단이 필요한 때다.

정진영 경희대 교수·국제관계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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