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우(서울대 교수·서양정치사상)〓정치에서 중요한 것이 ‘말’, 특히 ‘구술어’입니다. 구술어가 형성되면서 공론장이 형성되고 거기서 정치가 이뤄지지요. 그런데 서양에서 구술어의 특성이 강했다면 동양에서는 문자성이 강했습니다. 그래서 동양은 대화보다 시(詩) 등을 사용하는 등 초(탈) 정치적 성향이 강해요. 이런 초(탈) 정치성은 우리 역사에도 나타납니다.
‘삼국사기’의 주몽 신화에 나오는 해모수는 유화와의 사이에서 주몽을 낳고는 사라집니다. 그리고는 잠깐씩 들러서 정사(政事)를 보고는 다시 하늘로 올라가 버리지요. 저는 이것을 ‘해모수 현상’이라고 부르는데 바로 한국 정치와 꼭 닮았어요. 기관장들은 아침에 잠깐 둘러보고 사라지고 국회위원들은 국회에 안 나오고 외유나 하고 돌아다녀요. 정치인은 그 현장에서 ‘썩어야’ 뭐가 축적이 되고 문제가 해결되는 법인데 중진의원들은 번번이 나라 밖으로 돌아다니니 미봉책만 생기는 것이죠. 대학도 마찬가지예요. 스타 교수는 잠깐 들러서 강의만 하고 나머지 졸개 교수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지요. ‘해모수 현상’이 우리 사회 전체에 만연해 있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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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에서는 직접 ‘의견의 대결’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지식인들과 정치 사회의 일반적 분위기는 의견의 토로(venting)는 많은데 대결(confronta-tion)은 기피하려는 경향이 강한 것 같습니다.
▽김우창(고려대 교수·영문학)〓여러 사람이 토론하려면 여러 가지 말이 하나로 ‘수렴’되게 하는 합리적 구조와 제도가 있어야 합니다. 민주주의는 다수를 위한 다수의 정치이지만, 동시에 합리성의 제도입니다. 합리성은 사람의 내면에 있는 원리이기도 하지요. 제도와 심성 또는 제도와 문화가 함께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합리성은 다수 의견에서 하나의 해답을 찾는 방법이기도 하지만, 정책 시행에서 목적과 함께 그 현실화를 위한 수단을 검토할 수 있는 힘을 말합니다.
예컨대 의료보험문제는 현실적 방안에 대한 고려가 없이 목적만을 안중에 두기 때문에 실패하는 것이지요. 합리적 토의는 목적에 대한 합의를 도출하지만, 목적이 현실적 방안으로 어떻게 될 수 있는가를 토의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김홍〓유교에서처럼 개인의 수양이나 의지를 강조하다 보면 모든 게 권력정치(power politics)로 간다고 봅니다. 정치에서는 집단적 사고(group thinking)의 경향 때문에 소수가 반론을 제기하기 무척 어렵습니다. 이게 대부분의 정치 실패의 원인입니다.
관제 토론을 보면 미리 시나리오를 짜고 합니다. 학계와 언론도 마찬가지지요. 설정된 특정 목적에 맞추려 하기 때문에 자연발생적으로 나오는 문제들을 침묵하게 되고, 엉뚱한 문제가 터지면 허둥지둥하지요. 권력을 가진 사람이 반대자를 명시적으로든 묵시적으로든 봉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지요. 이것은 공적 영역에서 대단히 위험한 일입니다.
▽박충석(이화여대 명예교수·한국정치사상)〓이는 사회적 기술이 문화적 전통과 접목되지 못한 결과라고 봅니다. 고대 중국에서는 법(法)과 술(術)의 사상이 나오지만 정치·사회적 기술로서 발전적으로 사회에 정착하지 못했습니다. 사회를 볼 때 부단히 재생산되는 패턴이 어떤 것인가에 주목해야 합니다. 앞에서 부패가 지적되기도 했지만 유교에서는 도덕적 인간을 양성하면 부패문제 같은 것은 해결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요.
▽김우〓제도도 중요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도덕적 사회를 이루는 것이 중요합니다. 도덕적 사회가 돼야 도덕적 정치를 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정말 필요한 것은 우리에게 중요한 도덕이 어떤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민족 역사 정의 등을 위한 도덕도 필요하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정직성’과 ‘자기 인생을 자기가 산다’는 태도입니다. 정직성은 자기 인생을 떳떳하게 사는 데 관련돼 있습니다. 자기 인생을 자기가 사는 사람이 무엇 때문에 거짓으로 인생을 꾸미겠습니까.
정직성은 현대의 개인주의에도 맞고, 유교적 내면성에도 맞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법과 제도로서 쉽게 구체화될 수 있습니다. 사실 현대 사회의 법과 제도의 많은 것이 이것을 사회적으로 확보하려는 것이 아닙니까. 유교의 덕목에서 모든 덕성의 기본이 되는 이것이 빠져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학벌 조작, 허영, 과시, 그리고 정치인들이 대의명분을 말하면서도 그것을 위하여 사실을 조작하는 것이 모두 이와 관련된 것입니다.
▽박〓하지만 내면주의적 성향이 강한 유교사상은 오랜 시간을 거치면서 형식주의로 타락했습니다. 집은 큰 것, 차는 비싼 것, 벼슬은 높은 것 등 형식적인 것에 매달리는 경향이 많습니다. 유교가 개척한 도덕 세계가 있고 특히 유교의 공동체주의는 좋은 점이 많지만 유교의 도덕세계가 과연 우리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지도 생각해봐야 합니다. 산업화가 지속되고 해외무역 의존도가 높아진 한국으로서는 서구문화·사상에 대한 연구와 훈련이 절박합니다.
▽김우〓세계화, 근대화, 자본주의화를 추구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것을 목적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 것은 삶의 조건일 뿐 삶의 목적은 아닙니다. 국가적으로 이 조건을 무시하고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잘못이지만 마치 이것이 삶의 목적인 양 또는 정책의 대(大) 이상인 양 생각하는 것도 잘못입니다.
▽박〓하지만 이런 현실을 무시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유교적 도덕적 사고방식을 앞으로 세계화의 한복판에서 자라는 세대에게는 기대하기 힘들 것 같습니다. 이제 ‘유교적, 도덕적인 인간이 돼야 한다’는 주장이 해체되다 보니 어떤 인간형이 미래의 한국사회를 주도해 가게 될 것인지 걱정입니다. 유교의 미덕을 현대사회에 접목해야 하는데 말입니다.
▽김우〓도덕성은 연역적 방법이 아니라 귀납적으로 나와야 합니다. 현실과 세속에 맞는 도덕을 확립해야지요. 현 정부는 외환위기 때 정직성과 도덕성을 연관해 ‘투명성’을 강조했습니다. 이것은 속임수가 없는 제도를 확립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옳은 잣대임에 틀림이 없지만 현 정부는 이를 확보하는 데에 성공했다고 할 수도 없는 상태에서 그 잣대가 금방 흐지부지 됐습니다. 하지만 정부가 의지를 가지고 추진하면 제도화할 수 있는 일입니다. 현 정부가 자본주의적 세계화를 수용하는 동시에 사회 정책을 추진했음에도 만족할 만한 결실을 보지 못한 것은 한편으로는 현실 합리성의 부족이 원인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근본 원리와 정신에 대한 깊은 이해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사회정책은 평등의 문제에 집중된다고 할 수 있는데 외면적 평등뿐만 아니라 인간 내면성을 존중하는 평등에 관심을 기울이면 더 철저하게 또는 더 유연하게 그것을 풀어나갈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평등의 문제가 간단히 외면적 제도만이 아닌 것은 귀족사회이면서도 복지 사회의 전형을 보여주었던 영국의 경우 같은 데서 볼 수 있습니다. 우리도 ‘인내천(人乃天)’ 사상이 있지만 평등의 보다 면밀한 정신사적 또 제도적 발전이 없었습니다. 내적인 평등이 부족했다고나 할까요. 사회적 평등은 개체의 생명의 성스러움에 대한 인정입니다.
▽김홍〓완전평등은 비현실적입니다. 문제는 정당화될 수 없는, 납득되지 않는 불평등입니다. 국민들은 정치지도자들의 살인적 무감각성에 분노와 반발을 일으킵니다. 같은 세계에서 같이 생각하고 공명해야 하는데 ‘해모수적 현상’이 나오고 있습니다. 적어도 다음 대통령은 밖으로 떠돌아다니지 않고 그 자리에서 ‘한알의 밀알이 자라고 썩듯이’ 그 자리를 지키는 사람이 나오길 ‘앙망(仰望)’합니다.
▽박〓산업화 이후 반세기가 돼 가고 한국이라는 국가 규모가 우리의 생각이 미치지 못할 정도로 상당히 커졌습니다. 하지만 요즘 대선 후보들은 체제 차원에서 볼 때 현대한국사회의 구조적인 재편성 과정에서 제기되는 이해와 갈등을 조정하는 통치능력이나 정치적 기술이 너무 부족한 것 같습니다. 현재의 경선이 정당민주화의 시행착오를 겪고 있지만 이것이 보스 정치에서 벗어나는 과정이 되길 바랍니다.
▽김우〓다음 대통령에는 성질 급한 사람이 나오면 곤란할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자기의 외곬 프로그램만 추진하는 사람은 실패합니다. 어떤 목적을 추구하든지 기본수단으로 투명성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점에 관련하여 새 정권이 필요한 것으로 또 합리성을 들어야 하겠습니다. 이 정권은 좋은 목적으로 가지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 현실적 의미를 총체적으로 살피고 연구하는 합리성이 부족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통일이나 의료나 교육 등에서 사람들이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상당부분 목적의 차원에서가 아니고 수단의 차원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다른 한편으로는 목적에 대해서도 철저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교육의 경우 교육이 뭐냐, 어떤 걸 해야 하느냐 하는 근본적인 생각은 하지 않고 수능을 쉽게 하고 과외를 없애자는 부차적인 문제에 매달려 온 것이 우리의 교육 정책입니다. 의료문제나 통일의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새로운 대통령은 몰라도 적어도 새로운 정부는 국가목표를 정치 슬로건이나 파당적 투쟁을 넘어서는 도덕적 비전으로서 제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목표는 물론 원리주의적으로 도출되는 것이라기보다는 합의를 위한 토의와 설득에 개방되어 있는 것이라야 합니다.
▽김홍〓거창한 제도는 아니더라도 그때그때 긴급한 이슈들이 기탄 없이 제기될 수 있는 대화의 공간, 담론의 공간이 모든 사람에게 접근 가능해야 합니다. 이것은 반드시 정부나 정치지도자에 의해서가 아니라 사회의 지적 지도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봅니다.
▽박〓통치자란 변화하는 시대 상황을 냉철하게 꿰뚫어 보고 그와 같은 상황을 헤쳐 나갈 수 있는 제도와 정책을 강구할 수 있는 정치적 지혜와 능력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전환기에 처한 한국사회에서 우리 국민들은 이제 가부장제적 권력의 사유화를 막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운동, ‘판’과 ‘바람’의 정치가 아니라 문제 해결의 절차와 참여를 존중하는 민주정치를 뿌리내리게 하는 운동, 국민의 의사를 제대로 대변하는 중간 집단을 성숙케 하는 운동을 활성화시켜야 합니다. 자유주의는 부단한 자기 비판과 수정을 거칠 때 살아남을 수 있는 것입니다.
정리〓김형찬기자 khc@donga.com
황태훈기자 beetlez@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