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가족 금강산 상봉]"남편이 왔어야 할 자리에…"

  • 입력 2002년 4월 28일 18시 05분


“경필, 형필, 철규, 홍규 네 사람이 같이 보아라. 소식도 못 듣고 만나지 못한 채 57년이라는 긴 세월이 흘렀구나.”

여송죽씨(78·서울 동작구 사당동)는 북의 시동생 경필씨가 남편(허창극·80)의 편지를 읽어 내려가는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경필씨가 편지를 다 읽자 여씨는 “내가 올 자리가 아닌데…”라는 말을 되풀이하면서 남편 대신 자신이 온 사정을 설명했다.

이산가족 상봉 신청 때 부부가 각각 신청하면 기회가 두배로 늘어난다고 해서 따로 했는데, 추첨 결과 남편은 떨어지고 여씨만 붙은 것이었다.

여씨가 “적십자사에 나 대신 남편을 보내줄 수 없느냐고 통사정했지만, 이미 북한에 명단이 통보돼 ‘안 된다’고 하더라. 남편은 ‘나 대신 동생 얼굴 많이 보고 와서 자세히 전달해달라’고 신신당부했다”고 말하자 경필씨의 눈자위가 붉어졌다.

함흥 사범대학 출신으로 교직생활을 하다 정년퇴직한 남편은 지난 6개월 동안 밤잠을 설쳐가며 동생들에게 보낼 편지를 적기 위해 컴퓨터와 워드프로세서를 공부했다고 여씨는 전했다.

금강산〓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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