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가족 금강산 상봉]"52년만에 ‘바가지’

  • 입력 2002년 4월 28일 22시 04분


“목포서 떠날 때부터 애인이 있었던 거 아니여?”

정귀업씨(77·전남 영광군 염산면)는 28일 금강산여관에서 북한의 남편 임한언씨(76)를 만나 52년 만에 ‘바가지’를 긁었다.

정씨는 “재혼자가 몇 살이여”라고 묻고 남편이 “66세”라고 대답하자 “애인 안 데리고 왔제? 다짐해. 애인 데리고 왔으면 썩어죽을 인간이라고 했어”라며 남편을 다그쳤다. 살가운 부부싸움이 TV 카메라에 잡히는 것을 부담스럽게 쳐다보던 임씨는 연방 “아니여”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정씨는 1944년 꽃다운 나이인 19세에 영광 출신의 남편을 만났지만 결혼생활 6년간 남편과 지낸 시간은 불과 1년. 목포고를 졸업하고 서울 한양공대에 다니던 남편은 6·25전쟁이 나면서 소식이 끊겼지만 정씨는 홀로 시부모에 시조부모까지 모시며 수절했다.

“밤잠 안자고 길쌈하고 논 두 마지기 농사로 살았제. 지금 세상 같으면 재혼이라도 했을 텐데. 그땐 세월이 그랬어라우.”

그동안 어떻게 살았느냐는 남편의 물음에 정씨는 “집안이 거지집이 돼버렸어라우. 이건 산 것도 아녀. 죽은 것도 아니고…”라며 말끝을 맺지 못했다.

북쪽에서 대학을 졸업한 뒤 교편을 잡고 재혼해서 5남매를 둔 남편을 한참 몰아세우던 정씨는 “여자(새 부인) 마음씨는 고와요? 악종 아니여”라며 비로소 조금씩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남편은 멋쩍게 웃으며 “괜찮지”라고 말했다.

2시간 내내 남편의 두 손을 꼭 잡았던 정씨는 “나쁘다고 할 것 있나. 불가피한 사정인데”라며 “그 여자한테 어쨌든 잘 살라고 하셔”라고 남편의 행복을 빌었다.

정씨는 남편에겐 한복 금목걸이 반지 등을, 재혼한 아내에겐 한복을, 북쪽 남편의 자녀들에겐 시계 등을 선물로 전했다.

금강산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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