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본 것보다 할아버지 진짜 모습이 훨씬 나아요.”
북한의 할아버지 박문근씨(76)를 생전 처음으로 만난 최연소 방문자 박승한군(13·휘문중 1)은 이산가족들의 상봉 모습이 신기해 보였다.
90세 넘은 할머니가 넷이나 되는 남측 방문단 중 유일한 10대인 그는 MP3 플레이어를 지닌 채 금강산을 찾았다.
승한군은 서울대 의대를 나와 북에서도 외과의사로 일한 할아버지를 자랑스럽게 바라보았다. 할아버지도 연신 어린 손자가 귀여운 듯 머리를 쓰다듬고 손도 잡아보지만 승한군은 아직은 할아버지의 애정 공세가 얼떨떨한 표정이다.
어른들이 옛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보다가 “여기 보세요”라며 캠코더로 할아버지의 얼굴도 담아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심심해하는 눈치도 보였다. 전날 단체 상봉장에서 옆 테이블의 다른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의 우는 모습을 신기한 듯 몰래 훔쳐보기도 했지만 그는 내내 할머니를 부축해드리고, 어른들의 말씀을 경청하는 의젓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할아버지 외에도 승한군의 가족은 남쪽의 할머니와 어머니가 소아과 의사, 아버지는 산부인과 의사로 일하는 보기 드문 의사 집안. 커서 의사가 되고 싶으냐는 주위의 물음에 승한군은 씩 웃기만 했다.
▼北김강현씨 50년 수절 부인 안정순씨에 그리움 토로▼
50년 넘게 수절해온 안정순씨(74)는 2일 금강산여관 개별상봉에서 북한의 남편 김강현씨(76)의 손을 잡은 채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1948년 어느 날 아침 식사를 마치고 집을 나선 뒤 소식이 끊겼던 남편 김씨는 “당신은 여전히 내 애인이야. 우리가 갈라지고 싶어 갈라졌나”라고 위로했다. 안씨는 “당신은 정말로 자상했어요”라며 “한 번이라도 만나기 위해 수없이 많은 기도를 했다”며 목이 메었다. 지난해 서신 교환을 통해 남편이 북에서 재혼해 딸 넷을 두었다는 소식을 접했지만 안씨의 그리움은 여전했다.
김씨는 “가까이 오라는데 왜 안 오나. 이제 놓치면 안 되지…”라며 짐짓 큰소리를 쳐보지만 아내에 대한 미안한 마음에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여운형(呂運亨) 선생이 만든 중외일보에서 기자생활을 했던 김씨는 1948년 김구(金九) 선생 등과 함께 평양에서 열린 남북대표자연석회의에 참석해 김일성(金日成) 주석을 만나기도 했다. 김씨는 북으로 올라간 뒤 내각 직속 중앙지도간부학교에서 근무하다가 황북일보사에서 기자생활을 계속했다.
금강산공동취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