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이번 국민참여 경선대회를 통해 얻은 최대의 민주적인 성과는 무엇보다도 영호남을 축으로 한 정치적 지역주의를 탈피해 정치적 지역통합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는 점이다.
이번 경선을 계기로 1960년대 이후 40년 가까이 이 나라 군사문화와 3김 정치지도자에 의해 지배된 뿌리깊은 정치적 지역주의가 해소될 수 있는 개연성이 높아졌다.
▼불법 불감증 만연▼
지역주의 타파의 첫 봉화는 3월16일 광주에서 열린 민주당 경선에서 올랐다. 이 지역 연고가 없는 노무현 후보가 이 지역에 연고를 두고 조직과 인맥이 탄탄한 한화갑 후보를 압도적으로 누르고 1위를 차지한 것이다.
영남지역에서의 한나라당 경선 대회에서도 지역주의는 위력을 잃고 맥없이 쓰러졌다. 이 지역에 연고를 두지 않은 이회창 후보가 이 지역에 연고를 둔 최병렬 이상희 후보를 압도적으로 누르고 사실상 야당 대통령 후보로서의 자리를 굳힌 것이다.
영국의 역사학자 에드워드 H 카는 자신의 저서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역사상에는 의미심장한 실패라는 것도 없지 않다. 역사에는 소위 지연된 성공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 있다”고 했다.
이번 경선에서 그동안 공고한 것으로 보였던 영호남간 지역주의의 높은 벽이 허물어진 것은 카가 말한 ‘지연된 성공’이다.
지역주의의 붕괴는 국민의 일부가 어떤 지역의 주민이라는 이유만으로 부당하게 소외되거나 불이익을 받는 일이 없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우리 민주주의가 완전히 선진화되었다고 말할 수 없음은 물론이다.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은 1961년 1월 20일 취임연설에서 “만일 자유 사회에서 어려운 다수의 국민을 돕지 못한다면, 부유한 소수의 국민 또한 지킬 수 없다”고 말했다. 이것은 다수의 어려운 국민의 이익을 위해 부유한 소수의 국민을 희생시키거나, 부유한 소수 국민의 이익을 위해 다수의 어려운 국민에게 손실을 끼쳐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느 정당이 집권하든, 특별한 이익이나 손해를 보는 계층이 있어서는 아니 되며, 사회적 가치와 기회가 공정하고 균등하게 모든 국민과 집단에 주어져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와 같은 형평은 합리적인 법 체제의 완비와 법치주의의 확립을 통해 실현될 수 있다.
법치주의의 확립을 통해 공정한 ‘룰’이 우리 사회 전반에 정착될 수 있을 때, 대통령과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바탕으로 민주주의와 경제의 선진화를 실현할 수 있다.
여기서 강조하는 법치주의의 확립은 관료주의의 폐단을 자초하는 법규 만능을 의미하지 않는다.
사회 질서 유지와 기본권 보호 및 국가경쟁력을 위해서 필요한 법률은 최소한으로 있어야 하지만, 여기에 걸림돌이 되는 불필요한 법률은 과감히 폐지 또는 개정되거나 새롭게 제정되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우리 사회에 만연된 법치주의에 대한 경시풍조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法治 세울 정책대결을▼
힘있는 개인이나 이익 또는 불법집단은 말할 필요가 없고, 일반 개인에 이르기까지 사익의 추구를 위한 불법적인 행위에 대한 불감증이 만연되어 있다. 불법행위는 부패 심리에 기인한다.
한 나라의 법률의 적용이 사회적 약자에게는 두려움의 대상이 되고 사회적 강자에게는 무용지물이 된다면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부패와 특권·특혜의식을 잠재울 수 없다.
오늘의 특정 경제·노동·직능이익집단들도 사회적 강자그룹에 속한다. 이들 사회적 강자의 조직들도 비조직화된 불특정 다수의 국민의 이익에 위배되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정부는 법치주의와 제도면에서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오는 대통령선거에서 여·야 대통령 후보들은 상대방의 약점이나 취약점을 들추어내는 낯뜨거운 인신공격이나 끝없는 폭로전을 벌이기보다는, 어떻게 하는 것이 이 땅에 민주적인 법치국가를 정착시킬 수 있는가에 대한 알맹이 있는 정책 대결을 펼쳐야 할 것이다.
박응격 한양대 지방자치대학원장·행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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