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청와대의 ‘거짓폭로 권유’

  • 입력 2002년 5월 20일 17시 59분


청와대 측이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차남 홍업(弘業)씨와 돈거래 문제로 검찰 조사를 받고 있는 유진걸(柳進杰)씨에게 “검찰의 강압수사가 있었다고 폭로하라”는 권유를 했다고 한다. 유씨 측은 청와대의 그런 권유를 담은 녹음테이프까지 보관하고 있다는 것이다. 반대로 유씨에 대한 강압수사가 사실이라고 주장하는 변호사도 있어 논쟁이 예상되기는 한다.

그러나 우리가 특히 주시하는 것은 청와대라는 권력의 핵심이 검찰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다. 청와대 측은 강압수사 여부에 대한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청와대 행정관 박종이씨를 유씨에게 보냈다고 하지만 그보다는 더 적극적으로 ‘강압수사 폭로’를 종용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청와대 측이 그처럼 종용했다면 말이나 될 일인가. 설령 강압수사가 있었다 해도 담당 변호사가 나설 일이지 청와대가 나설 일은 아닐 것이다.

김 대통령은 아들들 문제에 대해 기회 있을 때마다 “검찰의 수사를 지켜보며 법의 결정에 따르겠다”고 말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청와대 측의 행동은 김 대통령의 다짐과도 정면 배치된다. 검찰에 의도적으로 압력을 가하려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을 지울 수 없다.

며칠 전에도 민주당의 노무현(盧武鉉) 대통령후보와 한화갑(韓和甲) 대표가 검찰이 일방적으로 민주당만 몰아붙이고 있다는 식의 발언을 해 논란이 됐다. 지금은 권력을 잡고 있는 측이 조금이라도 검찰을 ‘건드리는 행동과 발언’을 한다면 본인들은 아무리 변명해도 그 의도에 대한 의심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청와대 측이 유씨의 거짓 진술을 종용한 내용을 담고 있다는 문제의 녹음테이프는 하루빨리 공개되어야 한다. 그 테이프의 내용에 따라 관련 인사들에 대한 철저한 법적 문책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검찰을 흔들려는 권력의 기도는 어떠한 것이든 차단되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검찰의 중립을 보장하는 길이고 검찰 수사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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