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백서 발간 무기연기]北군부 남북관계 급속개선 우려

  • 입력 2002년 5월 24일 18시 16분


북한에 대한 주적(主敵) 표현 문제는 남북관계의 고비마다 각종 회담의 주요 변수로 작용해 왔다. 북한은 남북관계의 전환기마다 주적론 포기를 들고 나오곤 했다.

이는 북한 내 군부를 비롯한 기득권층이 급격한 남북관계 개선으로 자신들의 지위가 불안해질 것을 우려해 남북관계 진전의 ‘감속제’로 주적론을 활용해왔기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그러나 국방백서에 주적 개념이 포함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93년까지는 ‘적의 무력침공으로부터∼’라고만 돼 있을 뿐 국방백서도 북한을 공개적으로 ‘적’이나 ‘주적’으로 특정하지는 않았다.

94년 3월 남북특사교환을 위한 8차 실무대표 접촉에서 북한측 박영수 대표의 ‘서울 불바다’ 발언으로 남북관계가 급랭하면서 95년 국방백서에 처음으로 ‘북한〓주적’ 개념이 등장했다.

이후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으로 화해분위기가 조성되면서 북한을 주적으로 규정한 것에 대한 우리 사회의 찬반양론이 본격화됐다. 또한 북한도 남북정상회담 이후엔 기회 있을 때마다 ‘주적 표현은 6·15 공동선언에 대한 노골적인 배신행위’라며 삭제를 요구하고 나섰다.

북한이 본격적으로 문제를 제기한 것은 미국의 조지 W 부시 대통령 행정부 출범 이후 북-미관계 개선의 전망이 불투명해진 2000년 12월 4차 남북장관급회담에서였다. 결국 이 회담에서 남북은 뚜렷한 성과를 얻어내지 못했고 정상회담 이후 급진전되던 남북관계도 장기간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그런 와중에 정부 일각에서는 주적 표현의 삭제 또는 대체 여부를 은밀히 검토해 왔다. 국방부가 지난해 백서 발간을 격년제로 변경하는 형식으로 발간을 연기한 것도 이 같은 기류와 무관치 않다.

이번 백서 발간 여부를 둘러싼 우여곡절은 북한이 지난달 대통령 특사자격으로 방북한 임동원(林東源) 대통령외교안보통일특보에게 주적론 포기를 요구한 데서 비롯됐다. 이를 계기로 정부 내에서 다시 주적 표현의 삭제 또는 대체 여부에 대한 검토작업이 심도 있게 이뤄졌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정부당국자는 “임 특보 방북 당시 북한이 주적론 포기를 강하게 요구한 것은 사실이나 우리 측은 군사적인 신뢰구축 과정에서 이 문제를 논의할 수 있고 이를 위해서는 각종 교류를 계속해 나가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고 말했다. 즉 북한 측 요구를 수용한 것도, 거부한 것도 아니라는 얘기였다.

김영식기자 spear@donga.com

윤상호기자 ysh1005@donga.com

국방백서의 주적 표현 변천
▽1988년 국방백서(첫 발간)국방목표를 ‘적의 무력침공으로부터 국가를 보위한다’로 규정
▽1994년 국방백서국방목표를 ‘외부의 군사적 위협과 침략으로부터 국가를 보위한다’고 수정
▽1995년 국방백서국방목표에 ‘북한〓주적’ 개념 첫 등장
▽1996∼2000년 국방백서국방목표에 ‘주적인 북한’ 표현 명시
▽2001년 국방주요자료집국방백서 격년제 발간 방침. 자료집에 국방목표 삭제
▽2002년 국방백서 백서 발간 무기 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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