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요일 월드컵 열기를 느껴보려고 난생 처음 찾은 축구장은 여성축구팬들로 가득했다. 우리의 응원단 ‘붉은악마’의 상당수가 여성이라는 사실이 놀랐고 반가웠다. 최근에는 전국적으로 50여개의 주부축구단이 있을 정도로 여성과 축구는 친근한 사이가 되었다.
▼여성이 정치하면 부패 줄어▼
인류의 역사는 한마디로 소수의 특권층으로부터 다수의 대중에게로 권력이 분산되는 방향으로 발전되어 왔다고 할 수 있다. 축구의 발전은 바로 이러한 역사의 발전과 맥을 같이 한다. 엘리트의 스포츠로 시작한 축구가 노동자를 포함해 전 국민의 전폭적인 사랑을 받게 된데에는 공 하나만 있으면 어디에서나 즐길 수 있는 서민적인 운동이기도 하지만 남성적 운동이라는 점도 한몫 했다. 이런 점에서 그동안 권력으로부터 철저히 소외됐던 여성이 축구를 즐기게 되었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하지만 한국 여성축구 인구의 저변확대가 여성의 권한 신장과는 무관하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2001년 유엔개발계획(UNDP)이 발표한 여성권한척도(GEM)에서 한국은 전체 64개국 중 61위를 차지해 여전히 후진국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나 여성인력개발 정도를 보여주는 인간개발지수(HDI)는 162개국 중 27위였다. 제대로 훈련된 여성자원이 우리 사회에서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여성권한척도가 낮은 원인 중 하나는 여성의 선출직 진출이 부진하다는 데 있다. 여성의 정계 진출을 가로막는 요인은 다양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주장이 경험적 자료에 의해 뒷받침되지 않는 신화에 불과하다. 가장 대표적인 신화는 여성이 여성을 찍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물론 인구의 절반인 여성이 모두 여성을 찍는다면 여성후보는 쉽게 당선될 것이다. 그러나 모든 여성이 여성을 찍어야 한다는 주장은 모든 남성은 남성만 찍어야 한다는 주장만큼이나 비이성적이다. 실제로 여성은 남성에 비해 여성후보를 더 지지하는 것으로 한국여성정치연구소의 연구 결과 드러났다.
그 다음 신화는 여성은 당선율이 낮기 때문에 공천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연세대 신명순 교수는 실제로는 여성후보의 당선율이 남성에 비해 오히려 약간 높은 것을 발견했다. 여성은 공천 받기는 어렵지만 일단 공천을 받은 여성은 남성보다 자질이 우수하기 때문에 당선율이 높게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최근의 한 여론조사에서는 응답자의 78%가 같은 조건이라면 기초단체장으로 여성을 찍겠다고 응답해 유권자는 여성후보를 찍을 준비가 돼 있음을 알 수 있다.
문제는 정당이다. 이번에는 상향식 공천을 핑계로 여성후보를 밀어내 오히려 과거보다 더 상황이 악화되었다. 그렇다면 그동안 총재와 지구당위원장이 전횡을 휘두른 하향식 공천에서는 왜 여성을 공천하지 않았는지 묻고 싶다. 헌법이나 관계법령을 고쳐가면서 정당이 직접 여성의 정계 진출을 보장하는 유럽국가들은 물론 대만과 비교해도 핑계가 너무 옹색하다.
결국 정치 문호를 여성에게 개방하지 않는 것은 그만큼 정치에는 여성과 나누고 싶지 않은 떡고물이 많다는 증거가 아닐까. 그렇다면 여성정치인의 증가 없이는 우리가 부패공화국의 오명에서 벗어나는 일이 쉽지 않을 것 같다. 어떤 국가의 국회와 정부에 여성의 참여가 10% 증가하면 세계은행과 세계투명성기구의 국가청렴도지수와 부패지수가 각각 0.25, 1.2씩 개선된다는 연구는 여성이 왜 정치에 참여해야 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정치문호 더 넓혀야▼
경기 막판에 프랑스의 세 번째 골이 터진 뒤 프랑스선수의 핸들링 반칙으로 우리가 동점골을 넣을 수 있는 페널티킥 기회가 오는 듯했으나 심판이 그대로 넘어가자 응원단에서 음료수 페트병들이 날아왔다. 프랑스팀의 골키퍼는 병을 운동장 밖으로 던지느라 여념이 없었다. 순간 이쪽에서 “던지지마” “그만해” 하는 고함이 터져 나왔다. 여성축구팬들의 음성이었다. 무질서한 장내 분위기를 여성축구팬들이 바로 잡은 것처럼 여성정치인은 부정부패와 반칙투성이인 한국정치를 바로 잡는 데에도 큰 기여를 할 것이다.
지구촌이 하나되는 축제, 2002 한일월드컵이 성공리에 치러지고 같은 시기에 실시되는 지방선거에서는 여성후보가 약진하기를 함께 기대해본다.
조기숙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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