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봉사자 끌어모아라”

  • 입력 2002년 6월 7일 18시 29분


《6·13지방선거가 다가오면서 각 후보들이 경쟁적으로 자원봉사자 늘리기에 나섰다. 선거사무원과 달리 자원봉사자는 선거관리위원회에 신고나 등록할 의무가 없는 데다 인원 제한도 없기 때문이다. 또한 자원봉사자들은 어깨띠를 두르고 거리유세 등에 참여할 수는 없지만 이웃이나 친구를 대상으로 한 선거운동에는 제약이 없다. 자원봉사자에게 일당이나 금품 향응을 제공하는 것은 불법.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후보들은 은밀하게 금품이나 향응을 제공하는 조건으로 자원봉사자를 모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뿐만 아니라 일부 농민이나 건설 근로자들이 이 같은 ‘유급’ 자원봉사자로 나서는 바람에 농촌이나 공사 현장은 일손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다양한 모집 방법〓영남권의 한 광역단체장 후보는 피라미드(다단계) 판매 방식을 도입해 자원봉사자를 늘려가고 있다. 선거 캠프 소속 운동원이 친지나 친구를 소개하고, 그 소개받은 사람이 또 다시 다른 사람을 모아오는 방식이다. 이 후보 측은 지금까지 이 같은 방식으로 자원봉사자 2000여명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한 광역단체장 후보 진영은 후보가 쓴 자서전의 일독을 권유하며 자원봉사자를 모으고 있다. 선거운동원들이 “책을 한번 읽어보아라”며 젊은 유권자들에게 접근하면 우군으로 ‘포섭’하기 쉽다는 것이 후보 측 설명이다.

▽무늬만 자원봉사자〓광주 선관위의 한 관계자는 “자원봉사자는 돈은 물론이고 간식도 제공받을 수 없다는 점을 각 후보들이 잘 알고 있어 선거운동기간엔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지만 선거가 끝난 뒤 대가를 주기로 약속한 경우가 적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전북지역의 한 기초단체장 후보는 “고생한 자원봉사자들에게 선거가 끝나면 수고비라도 줄 생각이다”며 “자원봉사자들이 밥 한 그릇, 술 한 잔 못 얻어먹게 만들어 놓은 현행 선거법이 오히려 음성적인 대가 제공을 부추기고 있다”고 말했다.

또 서울의 한 주부는 최근 모 구청장후보 측으로부터 “자원봉사자로 선거운동을 해주면 선거가 끝난 뒤 일당 5만원씩 계산해 주겠다는 제안을 받았다”며 “주변에서 이런 식으로 선거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말했다.

▽농촌지역은 선거 특수〓전남 무안군의 양파와 마늘 재배 농민들은 수확기를 맞았지만 일손을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이맘때면 형성되는 인력시장에 과거에는 하루에 500여명씩 모였으나 최근에는 그 수가 200여명으로 크게 줄어들었다는 것.

젊은 아줌마와 청년들이 선거운동원과 자원봉사자로 대거 빠져나가면서 그나마 구할 수 있는 사람도 50대 이상이 대부분이다. 공급이 줄고 수요가 늘다 보니 지난해 하루 3만5000원이었던 품삯도 올해는 5만원에서 6만원까지 크게 올랐다.

충북지역도 사정은 비슷하다. 농민들이 제때 모내기를 못하거나 수확철을 맞은 마늘 양파 보리 등을 거둘 일손이 없어 애를 태우고 있다. 충북 음성군의 장용환씨(67)는 “모내기할 사람을 구하지 못해 서울에 사는 아들과 며느리를 주말마다 불러들여 간신히 모내기를 마쳤다”고 말했다.

경기지역에 신축 중인 한 아파트의 현장감독도 “막일을 하는 사람들 상당수가 선거운동에 동원되는 바람에 공사에 큰 차질을 빚고 있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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