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상황실에서 개표과정을 지켜보던 이회창(李會昌) 대통령후보와 서청원(徐淸源) 대표를 비롯한 당직자들은 서로 악수를 하며 자축하는 분위기였다. 반면 민주당과 자민련 당사는 침통함을 넘어 충격을 이기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당사에서 개표상황을 지켜보던 민주당 한화갑(韓和甲) 대표는 방송사 출구조사가 발표된 직후 “전투에서 졌다고 전쟁에서 진 것은 아니다. 고려 태조 왕건도 후백제의 견훤에게 번번이 지다가 결국 이기지 않았느냐”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민련 김종필(金鍾泌) 총재도 개표 방송 직후 한동안 침묵만 지키다 “약속이 있다”며 당사를 떠났다. 한 당직자는 “당장 내일부터 한나라당이 어느 의원을 빼가느니 하는 소리가 끊이지 않을 텐데…”라며 망연자실했다.
하지만 승패분석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대통령 아들문제를 결정적인 패인으로 꼽았다. 한나라당이 일찌감치 대통령 아들 ‘게이트’를 전면 부각시키면서 ‘부패정권 심판론’을 들고 나왔지만, 민주당은 이에 맞서는 논리를 내놓지 못하고 어정쩡한 모습만 보였다는 것이다.
이해찬(李海瓚) 서울시 선대본부장은 13일 “대통령 아들 문제 때문에 민심이 확 돌아섰다. 솔직히 당원들이 주변에 민주당 얘기를 꺼내기가 어려울 정도였다”고 말했다. 당 선대위의 한 핵심관계자도 “DJ를 안고 가는 것도, 그렇다고 버리고 가는 것도 아닌 상황의 연속이었다”고 되돌아봤다.
당 지도부 간 불협화음과 노무현(盧武鉉) 대통령후보 체제로의 당력 결집 실패도 패인으로 분석됐다. 김원길(金元吉) 사무총장은 “경선에 전력 투구하다 보니 본선에서 힘이 빠져버렸다”고 말했다.
반면 한나라당 허태열(許泰烈) 기획위원장은 “이번 지방선거가 현 정권 4년간의 실정(失政)에 대한 중간평가라는 점을 홍보하면서 선거기간 내내 권력형 비리를 성토했는데, 이것이 유권자들로 하여금 민주당에 등을 돌리고 한나라당을 선택하게 한 핵심 요인이었다”고 승인을 분석했다.
한나라당의 정당 지지도가 민주당보다 앞선 점도 주요 승인으로 꼽혔다. 월드컵 열기 등으로 지방선거에 대한 무관심이 팽배한 데다 유권자들이 단체장 후보보다는 소속 정당을 보고 표를 던진 경향이 많았다는 것.
한나라당은 또 이회창 후보와 서청원 대표를 중심으로 단합해 접전, 우세, 열세 지역에 당력을 효과적으로 집중했다고 자평했다.
자민련은 JP가 대선 전망을 명확히 보여주지 못한 채 DJP연대와 결별 사이를 오락가락하는 바람에 충청권 유권자들에게 실망을 안겨줬다고 자인하고 있다. 한 재선의원은 “‘JP와 자민련이 도대체 뭘 하려는지 모르겠다’는 주민들의 말이 많았다”고 전했다.
최영해기자 yhchoi65@donga.com
윤종구기자 jkma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