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사 출구조사 ‘300m룰’ 또 무시

  • 입력 2002년 6월 13일 23시 36분


KBS와 SBS가 13일 서울 대전 등 지방 선거 광역단체장 선거구에서 실시한 투표자 출구 조사의 일부가 투표소 300m 밖에서 실시해야 하는 선거법 규정을 어기고 투표소 인근에서 이뤄져 논란이 일고 있다.

특히 2000년 4월 제16대 총선에서 처음 출구 조사를 실시한 방송 3사들도 실효가 없다며 ‘300m 규정’을 무시한 바 있어 출구 조사 지점의 거리 문제가 쟁점이 되고 있다.

이날 서울 서초구 서초4동 원당초등학교에 마련된 투표소에서 KBS 출구조사 요원들은 투표소에서 약 40m 떨어진 학교 정문 앞에서 투표를 마치고 나온 유권자들을 대상으로 조사를 벌였다. 이 곳에서 투표한 김모씨(26)는 “투표소를 나온 지 얼마 안돼 조사요원들로부터 누구를 서울 시장으로 찍었느냐는 질문을 받았다”고 말했다.

서울 종로구 교남동 서대문장로교회에 마련된 투표소에서는 투표소 바로 앞에서 출구 조사가 진행돼 일부 유권자들이 출구조사를 하는 곳이 투표소인줄 알고 문의를 하기도 했다. 한 여성(52)은 “투표를 하고 나오자마자 그 결과를 물어와 당황스러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출구조사를 실시한 KBS와 SBS 측은 “투표소에서 나오는 유권자를 300m 밖으로 ‘유인’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 규정을 지키기 어렵다”고 말했다. SBS 선거방송기획팀의 김형민 팀장은 “출구조사 요원들에게 300m 규정을 교육시켜도 투표소에서 나오는 유권자들을 확보하기 위해 이를 어기는 경우가 있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2000년 총선 때와는 달리 출구조사를 실시하지 않은 MBC 측은 “300m 규정을 지키면서 조사를 할 경우 효과도 의심스러운데다 인건비 등 비용을 많이 투입해야 하기 때문에 조사를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고려대 허명회(許明會·통계학) 교수는 “정확한 출구조사를 위해서는 투표에 참가한 이들이 표본으로 추출될 확률을 동일하게 해야 하는데 투표소 300m 밖에서 무작위로 유권자를 접촉하는 방식은 표본의 정확도를 기하기 어렵고 결과 또한 일반화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미국은 출구조사 시 별다른 ‘거리 규정’이 없다.

이승헌기자 ddr@donga.com

박민혁기자 mh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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