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북한 금강산을 방문한 관광객들과 북한 안내원이나 세관원들의 첫 인사는 월드컵 덕담으로 시작한다.
통일부에 따르면 북한의 일반 주민들은 한국팀의 승전소식을 접하지 못하고 있다. 북한 TV는 한국의 승전소식을 전하지 않고 있다. 북한 TV는 한국, 일본, 미국을 제외한 월드컵 경기를 녹화중계하고 있다.
북한이 전한 월드컵과 관련한 한국소식은 월드컵이 한국과 일본에서 열렸다는 것과 한국과 미국 전을 앞두고 '남한의 반미열기에 미국 선수들이 떨고있다'는 작위적인 뉴스가 전부.
북한 고성군 온정리 일대의 금강산 관광지역에서 일하는 북한 세관원, 안내원, 현지 당국자들도 사정은 마찬가지. 현대아산 관계자들과 관광객들은 온정각 휴게소나 문화회관에 설치된 대형TV로 월드컵 경기를 시청하지만 북한 안내원들은 TV를 시청할 수 없다.
그러나 관광객들이나 아산관계자들이 모이기만 하면 월드컵 이야기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분위기에 전염돼 한국팀 경기가 있는 다음날이면 꼭 한국팀 소식을 묻는다.
북한에 상주하고 있는 현대아산 김한수 관광팀장은 "이탈리아 전을 앞두고 북한 당국자들이 '우리도 1966년에 이탈리아를 꺾은 적이 있다. 꼭 이겨라'고 격려를 했고 승전소식을 듣고 '남과 북이 이탈리아를 꺾은 경험을 공유했다'며 좋아했다"고 전했다.
한 세관원은 "TV를 안 봐도 어제 밤에 온정리 일대에 퍼지는 함성을 듣고 한국팀이 이긴 줄 알았다"고 덕담을 건넸다.
18일 금강산을 관광한 유영종(55·경북의성 안평중 신평분교장)씨는 "젊은 북한 안내원들은 월드컵의 의미를 잘 모르는 눈치였다"며 "다만 관광객들이 대부분 빨간 옷을 입은 걸 신기해하거나 젊은 여성들이 페이스 페인팅 한 것을 보고 '왜 예쁜 얼굴을 망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요즘 금강산 일대에는 북한관광이 시작된 이래 처음으로 애국가와 '대∼한민국'을 외치는 함성이 울려 퍼지고 있다. 현대아산측이 관광객들에게 금강산에 올라가거나 TV를 시청할 때 '필승 코리아'는 괜찮지만 애국가나 대한민국 구호는 안 된다고 여러 차례 경고를 줬다. 하지만 월드컵 열기에 취한 관광객들이 금지된 구호를 외쳐 아산관계자들이 긴장했지만 북한측도 이번만은 눈감아 주는 분위기다.
17일 한국-이탈리아 전을 온정각 문화회관에서 관광객들과 함께 시청한 아산 홍현주 과장은 "경기가 끝난 후 이 벅찬 감정을 북한 사람들과 함께 나눴으면 하는 생각에 눈물이 절로 나왔다"며 "남북한이 월드컵을 응원하는 날이 빨리 왔으면 하는 바램이 들었다"고 말했다.
경기가 끝난 후 일부 관광객들은 문화회관에서 어깨동무를 하고 '우리의 소원'을 개사, '우리의 소원은 4강'이라며 응원가를 불렀다.
<이병기기자>ey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