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야 통음〓이날 최고위원들은 먼저 집단지도체제에 불만을 품고 당직을 사퇴한 김원길(金元吉) 사무총장, 박병윤(朴炳潤) 정책위의장, 정범구(鄭範九) 대변인의 후임 인선을 논의했다.
중도파인 한광옥(韓光玉) 최고위원이 유용태(劉容泰) 의원을 사무총장에 천거하자 한화갑(韓和甲) 대표는 “대표가 총장도 마음대로 선임하지 못하느냐”며 불만을 터뜨렸다. 하지만 곧 마음을 돌려 제의를 수용했다.
정책위의장과 대변인은 노무현(盧武鉉) 대통령후보가 추천한 임채정(林采正) 이낙연(李洛淵) 의원으로 일찌감치 정해졌다. 기조위원장에는 이협(李協) 최고위원이 한 대표와 가까운 배기선(裵基善) 의원을 추천해 이의 없이 통과됐다.
인선이 대충 마무리되자 술이 거나해진 최고위원들은 거침없이 ‘취중 진담’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한 대표가 정대철(鄭大哲) 최고위원에게 “시중에 정 최고위원이 나한테 돈받았다는 얘기가 있다”고 말하자 정 최고위원은 “200만원 받은것 말하느냐”고 응수했고 정균환(鄭均桓) 최고위원은 “대표가 좀 포용력을 길러야지”라고 말하기도 했다.
밤늦게까지 통음하며 할 말을 쏟아낸 최고위원들은 “반드시 정권을 재창출하자”고 다짐한 뒤 헤어졌다.
▽향후 과제〓이날 회동을 통해 한 대표를 중심으로 한 당권파와 한광옥 박상천 정균환 최고위원 등을 중심으로 한 중도파 및 비주류간에는 일단 타협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더 엄밀히 말하면 친노(親盧) 세력과 중도파 연합의 타협이라고 보는 편이 정확하다.
반노(反盧) 성향이 강한 이인제(李仁濟) 의원 그룹이나 일부 동교동계 구파의 목소리는 거의 반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같은 타협은 당의 역학구도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노-한 체제를 지지하는 당권파의 입장에서는 50% 정도에 불과한 지분으로 당을 끌고가는 데 한계를 느끼고 있고, 중도파로서도 어차피 재·보선까지는 현 체제로 갈 수밖에 없다는 판단을 하고 있는만큼 ‘더 이상 당이 흔들려서는 안된다’는 공감대가 쉽게 형성됐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날 회동의 약효가 얼마나 오래갈지는 미지수이다. 특히 8·8 재·보선 결과에 따라서는 노 후보 체제를 부정하는 반노 세력의 저항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정책위의장과 대변인 물망에 올랐던 충청권 출신 홍재형(洪在馨) 전용학(田溶鶴) 의원이 당직에서 배제된 것도 불씨가 될 소지가 크다.
이날 최고위원들은 홍 의원을 선대위 부위원장과 같은 비중 있는 자리에 배려하기로 의견을 모았지만, 그 정도로는 비주류를 껴안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이 당내의 중론이다.
윤영찬기자 yyc11@donga.com
최영해기자 yhchoi6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