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본적 문제 안은 국무총리제도]퇴임총리가 새정부 각료…

  • 입력 2002년 7월 16일 18시 55분


'민생법안 산더미' - 안철민기자
'민생법안 산더미' - 안철민기자
장상(張裳) 총리서리는 7·11 개각으로 새로 입각한 7개 부처 장관에 대해 임명제청권을 전혀 행사하지 못했다. 국회 임명동의를 아직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들 신임 장관의 제청권은 퇴임이 이미 결정된 이한동(李漢東) 전 총리가 행사하고 물러났다.

장 총리서리가 국회에서 인준을 받아 정식 총리가 된다 하더라도 현 내각엔 자신이 제청권을 행사한 사람이 하나도 없게 된다. 경우에 따라서는 장 총리서리가 내년에 출범하는 차기 정권의 초대 장관에 대한 임명제청권을 행사해야 하는 상황도 빚어질 수 있다.

이런 기현상은 헌법상 보장된 총리의 각료 임명제청권의 취지와는 거리가 멀다. 뿐만 아니라 총리서리 관행에 대해서도 위헌 논란이 제기되고 있어 총리제도 전반에 대한 재검토가 요구되고 있는 상황이다.

소수 여당으로 출발한 현 정부는 98년 2월 첫 조각(組閣)부터 비정상적인 장관 임명제청 절차를 거쳤다. 현 정부의 초대 장관들에 대한 임명제청은 김영삼(金泳三) 정부의 마지막 총리였던 고건(高建) 전 총리가 했다. 물러나는 전 정권의 총리가 새로 출범하는 정권의 장관 제청권을 행사하는 사태가 발생한 셈이다.

새 정부의 입장에서는 총리로 지명된 김종필(金鍾泌) 자민련 총재가 국회 임명동의를 받지 못한 상태여서 장관 임명제청을 할 수 없게 되자 부득이 이 같은 편법을 택한 것이었다.

그렇지만 당시 ‘DJP 공동정부’의 조각작업은 전적으로 김 대통령과 국무총리 내정자였던 김 총재간의 협의를 거쳐 이뤄졌고 김 총재는 자민련 몫으로 배정된 장관의 인선에 전권을 행사했다.

반대로 제청권을 행사했던 고 전 총리는 이미 정해진 장관 명단에 동의를 표하는 형식적인 제청 절차의 대리인 역할만을 한 셈이다.

당시 김 총재에 대한 국회 인준은 한나라당의 반대로 6개월 동안 지연됐고 만약 고 전 총리의 ‘대리인 역할’이 없었다면 헌법상 국정공백사태가 불가피했을 것이다. 국정 업무의 대부분이 장관의 서명이 필요한 데 총리의 제청절차 없이는 헌법상 장관 임명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국무총리제도를 둘러싼 논란이 때마다 빚어지는 것은 현행 총리제도가 갖고 있는 구조적 한계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현행 헌법에 대통령제적 요소와 내각제적 요소가 뒤섞여 있어 총리 지명 때마다 파행을 겪을 수밖에 없다는 얘기이다.

현행 헌법의 규정대로라면 ‘대통령의 국무총리 지명→국회의 임명동의→국무총리의 국무위원 제청→조각 또는 개각’이 순차적으로 이뤄져야 헌법정신에 부합한다는 것이 다수 헌법학자들의 일치된 견해다.

그러나 내각제적 요소인 ‘총리의 국무위원 제청권’이나 ‘총리에 대한 국회의 임명동의절차’가 가미됨으로써 내각의 구성 절차가 복잡해졌고 제도운영의 편의상 ‘총리서리’라는 기형아가 탄생할 수밖에 없게 됐다는 것이다.

더욱이 2000년 6월부터 인사청문회제도가 시행되면서 총리 인준절차에 최소한 20일가량이 소요됨으로써 상황은 한층 더 복잡해졌다. 정부 교체기에는 누가 장관 제청권을 행사해야 하느냐는 문제가 발생하고 장관의 임기가 진행 중인 평시에도 국회의 임명동의절차를 기다려 후속 개각을 할 경우 상당 기간 공무원조직의 동요에 따른 국정마비 현상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석연(李石淵) 변호사는 “지금의 헌법에 충실하기 위해서는 국회 임명동의를 받은 직후에 정식으로 총리를 교체하는 게 옳다”며 “정부 교체기에는 퇴임 직전의 대통령과 대통령 당선자가 사전 협의를 거쳐 새 정부 출범 전에 국회에 임명동의안을 내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그러나 총리인준 과정에서의 문제점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총리제도의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게 대다수 전문가의 의견이다.

김정훈기자 jnghn@donga.com

역대 총리서리 및 재직기간
신성모1950.4.21∼1950.11.22
허 정1951.11.6∼1952.4.9
이윤영1952.4.24∼1952.5.5
백두진1952.10.9∼1953.4.23
백한성1954.11.18
최규하1975.12.19∼1976.3.12
박충훈1980.5.22∼1980.9.1
남덕우1980.9.2∼1980.9.21
유창순1982.1.4∼1982.1.22
김상협1982.6.25∼1982.9.20
진의종1983.10.15∼1983.10.16
노신영1985.2.19∼1985.5.15
이한기1987.5.26∼1987.7.13
김정렬1987.7.14∼1987.8.6
이현재1988.2.25∼1988.3.1
강영훈1988.12.5∼1988.12.15
노재봉1990.12.27∼1991.1.22
정원식1991.5.24∼1991.7.7
김종필1998.3.3∼1998.8.17
이한동2000.5.23∼200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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