國政 보고시스템 ‘구멍’

  • 입력 2002년 7월 23일 18시 34분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23일 한중 마늘협상 파문과 관련해 ‘긴급수입제한조치(세이프가드) 연장 불가’ 합의가 발표에서 누락된 것은 정부책임이라고 인정했다.

그러나 청와대측은 당시 김 대통령이 이같은 합의내용을 보고 받지 못했다고 밝혀 논란이 일고 있다.

정치권과 정부 일각에선 김 대통령이 당시 마늘협상의 핵심 쟁점이었던 세이프가드 해제 여부에 대해 보고 받지 못했다는 것은 국정보고체계상 납득하기 어려운 데다 보고조차 안 됐다면 이는 국정 컨트롤 시스템에 문제가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지적하고 있다.

김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마늘 문제는 정부 부처의 안이한 태도 때문에 생겼다”며 “부속서류에 들어있던 2년반 뒤 세이프가드가 없어진다는 내용도 같이 발표됐으면 ‘속였다’ ‘감췄다’는 오해를 받지 않았을 것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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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대통령은 또 “정부 부처끼리는 서로 알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부속문서 발표가 누락됨으로써 마치 국민을 속인 것 같은 문제가 됐다”며 “그 결과가 얼마나 크게 번질 수 있는지 깨닫는 기회가 아닌가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김 대통령은 당시 ‘세이프가드 연장 불가’ 합의 내용을 보고 받았는지 여부에 대해선 직접 언급하지 않았지만 박선숙(朴仙淑) 대통령공보수석비서관이 브리핑에서 “김 대통령은 협상의 개요만 보고 받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당시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이었던 이기호(李起浩) 대통령경제복지노동특보도 이날 “외교통상부로부터 ‘세이프가드 연장 불가’ 합의에 대해서는 보고 받지 못했고 따라서 대통령에게도 보고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부의 한 관계자는 “청와대에 협상결과 보고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은 국정운영 시스템의 기본인 보고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음을 드러낸 것이다”며 “세이프가드 해제 여부가 핵심사안이었던 만큼 청와대도 몰랐다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고 말했다.

한나라당은 특히 “김 대통령이 보고를 못 받았다는 것은 파문수습을 위한 ‘입맞추기’가 아니냐”고 의문을 제기했다.

남경필(南景弼) 대변인은 “수십만 마늘농가의 생존권이 걸린 마늘협상 문제가 대통령에게 보고되지 않았다는 주장은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정부가 사건을 계속 축소 은폐할 경우 국회 차원의 국정조사 실시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연욱기자 jyw11@donga.com 이철희기자 klim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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