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경제 정말 변하고 있나]인센티브 도입 5년새 소득4배

  • 입력 2002년 7월 25일 19시 12분


《최근 북한의 가격개혁 조치 등이 잇따라 알려지면서 북한경제의 변화에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그러나 본보 신석호 기자가 최근 한국이웃사랑회와 함께 방문한 평양시 강동군 구빈리 협동농장은 이미 지난해부터 성과급제와 생산단위별 경쟁체제를 시행하고 있었다. 현장에서 본 북한경제의 변화상을 르포 형식으로 소개한다. 》

6월30일 방문한 구빈리 협동농장은 행정구역상으로는 평양시내에 있지만 평양중심지를 벗어나 비포장도로를 자동차로 2시간이나 달려야 하는 거리에 있었다. 덜컹거리는 소형승합차를 타고 도착한 젖가공 공장 뒤편에는 ‘풀로 고기를 만들자’는 구호를 커다랗게 써 붙여 놓았다.

이 농장은 99년 민간단체인 사회복지법인 한국이웃사랑회(회장 이일하)가 지원한 우유멸균기 치즈제조기 우유포장설비 우유운반 냉장차량 등으로 젖을 가공해 산유(요구르트)와 치즈를 하루 각각 2t, 800㎏ 정도 생산해 인근 육아원 탁아소 인민학교 등에 공급하고 있다.

구빈리는 과거 평안남도에 속해있던 농촌지역. 96년 젖염소 500마리를 입식하면서 축산단지 시범지구로 지정됐고 이후 주민소득이 5년 동안 4배로 늘었다.

이 농장에서는 젖염소 사업을 위해 주민 2700명 가운데 1200명이 일하고 있다. 대부분이 염소 3000여마리를 키우는 데 매달리고 젖가공 공장에는 10명이 하루 2교대로 일한다. 이곳에서 4년 동안 일한 주민 김종실씨(43)는 “보람이 크다”고 말했다.

96년부터 농장을 이끌고 있는 임귀남 지배인(44)은 “인민들의 건강을 위해 총생산량을 올해 400t에서 내년에는 1000t으로 끌어올릴 욕심”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이 농장 주민들의 소득이 급증한 것은 지난해부터 사실상의 ‘사업장 실적제’와 생산주체별 경쟁체제가 도입돼 생산량이 늘어났기 때문.

초기에는 생산량이 많지 않아 생산품을 전량 주민들이 소비했다. 이후 생산량이 늘어나자 지역에서 생산되는 제품은 지역주민들이 함께 소비한다는 원칙에 따라 일정 비율을 평양주민들에게 무상으로 공급했다. 특히 지난해부터는 평양시내 호텔 등에 산유와 치즈를 공급하고 국가가 정한 가격에 따라 돈을 지급 받음에 따라 사실상의 ‘인센티브제’가 도입됐다.

구빈리 농장의 경우 염소 수가 99년 1500마리로 늘어나 공동관리가 어려워지자 농장은 20∼50가구를 한 단위 마을로 묶어 염소를 나눠주면서 염소를 키우고 젖을 짜는 일에 경쟁체제를 도입했다. 염소를 더 잘 키우고 젖을 더 많이 생산하는 마을은 농장수입을 더 많이 분배받고 이 수입은 또다시 각 가정에 분배된다.

북한의 한 안내원은 7월2일 함께 방북한 한국이웃사랑회 관계자에게 “다음달 교원들 월급이 10배나 오르는데 교원을 둔 가족은 좋겠다”고 농담하듯 말했다. 이 관계자는 당시 이 말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북한당국은 당시 이미 임금 및 가격 현실화를 골자로 한 가격개혁을 일부 주민들에게 미리 알리고 대비하도록 한 것으로 해석된다.

평양고려호텔 등 시내 곳곳에는 두세 평 남짓한 공간에 천막을 치고 여성판매원 1, 2명이 내외국인을 상대로 간단한 의류나 기념품 약재 담배 등을 파는 ‘간이 매대’가 밤늦게까지 영업을 했다. 곳곳에 흑맥주 등을 파는 우리의 포장마차 같은 곳도 눈에 띄었다.

상당수 북한경제전문가들은 “북한은 ‘경제대국을 만든다’는 목표 아래 이미 몇 년 전부터 시장경제적 조치를 시범 도입했다”고 설명했다.

최근 북한의 변화에 대해 ‘시장경제로 넘어가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는 시각과 ‘기존 배급체제의 붕괴를 화폐경제 도입으로 해결하려는 것’이라는 해석이 맞서고 있다. 어느 쪽이 정확한지는 단언하기 힘들지만 우리가 모르는 사이 북한에서 커다란 변화가 진행되고 있는 것만은 분명했다.

평양〓신석호기자 ky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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