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서해교전 유감표명]식량난 극심…버티기 한계 느낀듯

  • 입력 2002년 7월 25일 23시 45분


북한의 6·29 서해교전에 대한 유감표명 및 남북장관급회담 제안은 우리 정부의 예상보다빨리 나왔다는 게 정부관계자들의 얘기다. 북한 스스로가 이번 교전사태를 줄곧 남측의 선제공격으로 주장해온 점 등에 비추어 정부관계자들은 31일 열리는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서 백남순 북한 외무상으로부터 간접적인 유감표명을 받을 수 있을지조차 우려하는 분위기였다.

따라서 북한이 남북간의 공개접촉도 없는 상황에서 이번에 스스로 유감표명을 한 데 대해 남측 및 미국과의 관계개선 필요성, 좀더 구체적으로는 식량원조 등 외부지원 확보의 절실함이 작용한 게 아니냐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또 북한 내부적으로는 최근의 경제개혁조치를 뒷받침하기 위한 카드라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중앙대 제성호(諸成鎬·법학과) 교수는 “북한의 태도변화는 최근 진행되고 있는 내부 경제개혁조치와도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임금 및 물가인상 등 가격개혁조치와 단위 사업소별 실적제도입 등 경제개혁조치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외부의 지원이 절실할 것이란 분석이다. 현실적으로도 북한은 내년 식량 부족분이 150만t으로 예상되는 등 극심한 식량난을 겪고 있다.

남북관계에 있어서도 다양한 효과를 기대한 것으로 보인다. 우선 남북대화를 진행함으로써 쌀 30만t 등 각종 대북지원을 받을 기회를 마련할 수 있는 데다 사과문제를 둘러싼 애매한 표현을 둘러싸고 벌어질 남남갈등을 노렸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북한의 태도변화에 우리정부의 강력한 물밑 촉구가 작용한 게 아니냐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특히 8·8 재·보선을 앞두고 민주당 노무현(盧武鉉) 대통령후보마저 ‘햇볕정책’을 비판하고 나서는 등 사면초가(四面楚歌)의 입장에 빠진 정부로서는 서해교전 사태로 야기된 비판여론을 해소하지 못하면 안된다는 절박감에 빠져 있었던 게 사실이다.

어쨌든 북한의 태도변화는 북-미관계 변화의 동인으로도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서해교전으로 냉각된 한반도 정세를 풀어나가는 첫 단추가 바로 북한의 사과였기 때문이다.

미국은 서해교전 직후 제임스 켈리 미 국무부 동아태담당 차관보를 수석대표로 한 미국 대표단의 방북을 취소하며 “공은 북한에게 넘어갔다”고 말해왔다. 따라서 북한의 이번 유감표명은 북-미대화 재개의 단초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북한의 유감표명 및 남북대화 재개 제의는 북한의 독자적인 결정에 의해 이뤄졌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으나 이는 거꾸로 북한의 대남 유화 제스처가 우리 정부의 대북지원을 노린 일회성 제스처 아니냐는 우려를 낳는 대목이기도 하다.

김영식기자 spear@donga.com

<북한전통문요지>

얼마전 서해해상에서 우발적으로 발생한 무력충돌사건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하면서 북남 쌍방은 앞으로 이러한 사건이 재발되지 않도록 공동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으로 간주한다. 서울에서 제7차 남북장관급회담을 개최하고 이미 쌍방사이에 합의한 남북철도연결문제, 이산가족문제 등 ‘4·5 공동보도문’ 이행문제와 그밖의 관심하는 문제들을 원만히 협의하기 위하여 오는 8월초 금강산에서 남북장관급회담 대표들의 실무접촉부터 가지자는 것을 제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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