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보내온 전화통지문 가운데 서해교전과 관련된 내용도 사과라고 보기는 어렵다. 김대중(金大中) 대통령까지 명백한 사과와 책임자 처벌, 그리고 재발방지 약속을 관철하겠다고 다짐했음에 비춰보더라도 차관보급 인사의 두루뭉실한 유감표명만으로는 미흡하다.
그런데도 통지문이 접수되자마자 통일부차관은 “명백한 사과와 유감 표시로 간주할 수 있다”고 공언했다. 한마디로 경솔했다. 노무현(盧武鉉) 민주당 대통령후보까지 비판했던 햇볕정책을 어떻게 해서든지 외형상으로나마 살려야겠다는 강박관념이 작동한 것 같다.
또한 통일부가 그처럼 중대한 사안에 대해 청와대와 교감 없이 단독으로 판단해 발표했을 리 없었을 것이다. 남북관계가 재생된 듯한 인상을 국민에게 주려는 데 연연한 나머지 청와대와 통일부가 합작으로 그 같은 발표를 서둘렀던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 특히 정부가 그제는 북한의 유감표명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가 어제 아침에는 신중론으로 돌아서더니 저녁이 되자 다시 기대(期待)를 표시하는 것은 중심 없이 흔들리는 모습이어서 국민을 불안하게 만든다.
북한에서 일어나고 있는 상황은 매우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 그런데도 임동원(林東源) 대통령특보는 최근 북한 경제정책이 중국의 개방 초기 개혁 양상과 비슷하게 바뀌는 듯이 공언했다. 이것은 햇볕정책의 결실로 북한의 변화가 시작된 것처럼 국민에게 인식시키고, 더 나아가 8·8재·보선에서 여권후보들이 득표하는데 도움을 주려는 것은 아닌지 묻게 된다.
우리는 남북대화의 진정한 개선과 발전을 희망한다. 따라서 이고리 이바노프 러시아 외무장관의 거중(居中)역할 표명, 그리고 앞으로 있을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을 비롯한 국제적 다자(多者)통로들에서의 토론과 대화를 주시하고 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선결과제는 북한이 보다 더 성실한 자세로 나와야 한다는 점이다. 북한의 제의를 무시할 일은 아니지만 그들의 속셈이 남한으로부터 식량을 지원받겠다는 것, 그리고 미국과의 대화를 열기 위해서는 남북대화가 진전되는 것 같은 인상을 주어야 하겠다는 것으로 분석되는 만큼 정부는 장관급회담을 서둘러 열지 말고 북측이 우리 요구를 수용하도록 끝까지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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