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최승희 1997년 복권됐다

  • 입력 2002년 7월 30일 14시 22분


"전설적인 무용수 최승희(1911∼?)가 1967년 북한에서 숙청됐으나 1997년경 복권(復權)됐다."

일본 아사히(朝日) 위성 TV에서 30일 방영된 90분짜리 특집 다큐멘터리 '세계의 무희 최승희- 격동의 시대에 농간 당한 그 인생'을 제작한 정수웅 다큐서울 대표는 '최승희 복권설'을 이같이 전했다.

그는 "지난해 연말 중국 옌볜에서 열린 최승희 심포지엄에 참가한 관계자들로부터 들은 소식"이라며 "김일성 사후인 1994년 출간된 '김일성 자서전'에 '최승희가 민족성을 고수하면서 조선무용을 현대적으로 개발했다'고 평가돼 있고 북한에서 제자들이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점을 감안해 복권 조치가 취해진 것 같다"고 풀이했다.

최승희의 죽음에 관해서는 북한에서 사실을 공개하지 않아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정 대표는 1967년 이후 활동에 대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지만 적어도 사살됐거나 감옥에 수감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북한을 다녀온 몇몇 유력인사들로부터 최승희가 중국으로 망명하려다 실패했으며 그 후 시골의 한 학교에서 무용을 가르쳤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는 것.

"최승희는 '국립 최승희 무용연구소'를 운영할 정도로 김일성의 총애를 받았다. 그가 숙청당한 것은 집단 체제에 적응하지 못했고 상층부와 자신이 직접 연락을 취하는 등 독선적 성격 때문이었다. 그러나 북한 내에서 최승희 춤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봐서 강제 처형 등의 조치는 없었다고 본다."

한편 정 대표는 이 다큐멘터리에서 1966년 당시의 최승희 모습을 최초로 소개했다. 일본의 한 인사로부터 극비리에 입수한 이 자료화면은 대사가 지워져있지만 1936년경 최승희가 불렀던 '이태리 정원'이라는 노래가 나온다.

그는 프랑스 파리 신문 박물관에서 일본의 대표적인 무희로 최승희를 2쪽에 걸쳐 소개한 '시그널' 1942년 2월호를 비롯, 1947년 구 소련에서 살풀이 춤을 공연하는 기록필름과 일본 유학 직전에 찍은 사진, 외국 공연에서 홍보용으로 촬영한 사진 등도 입수해 일부를 처음으로 공개했다.

정 대표는 최승희가 일제시대, 태평양 전쟁, 한국전쟁 등 시대상황으로 인해 희생당한 무용수였다고 평가했다. 그는 "돈황석굴을 무용으로 창작하는 등 국제적인 무희로 인정받았지만 일본에서 공연을 했다는 이유로 친일파로 몰리면서 1946년 남편 안막과 북한행을 선택한 것"이라고 말했다.

"최승희가 친일파라는 논쟁이 있으나 일본의 한 무용계 인사는 '일본에서도 조선 무용을 고수했을 정도로 애국자였다'고 증언했다. 이번 다큐멘터리가 최승희를 다양하게 재조명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그는 2주 동안 중국 미국 프랑스에서 자료를 보완한 뒤 8월경 국내 방송사를 통해서도 최승희 다큐멘터리를 각 50분 2부작으로 선보일 예정이다.

황태훈기자 beetle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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