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지난주 전통문에서 서해교전이 우발적으로 발생했다며 남북 쌍방이 재발 방지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리측이 답신에서 이 부분에 대해 전혀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으니 북한의 미흡한 유감표명은 물론 책임을 떠넘기려는 시도까지 수용한 셈이 됐다.
정부는 ‘무력충돌과 같은 불상사가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할 것’을 북한측에 촉구하기는 했으나 책임자 처벌은 슬그머니 사라졌다. 회담을 열어 미흡한 부분에 대해 시정을 요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통일부의 설명이 있지만 공식 문서로 남을 전통문에서 언급하지 않은 문제를 비공개 회담에서 따지겠다고 하면 어느 국민이 그 말을 믿을 것인가.
정부의 답신은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반드시 관철하겠다고 다짐한 ‘명백한 사과,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 약속’에 미달하는 것은 물론 국민 대다수의 여론과도 배치되는 것이다. 정부는 무엇이 급하고 아쉬워 북한의 통지문에 화답하듯 그런 수준의 답신을 보냈는지 모르겠다. 김 대통령이 임기 내에 가시적 성과를 얻기 위해 앞뒤 안 가리고 서두르는 것은 아닌가.
벌써부터 정부 내에서 장관급 회담이 잘 되면 북한에 30만t의 식량을 제공할 수 있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북한이 쌀을 받는 조건으로 다소간 책임을 인정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식량지원은 북녘 동포에 대한 인도적 차원에서 추진되어야 할 별도의 사안이지 도발사태 해결을 위한 흥정의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장관급 회담이 성사된다 해도 서해교전을 유야무야하는 빌미가 된다면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는 악선례가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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