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저에서 휴가 중이던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동의안 부결 소식을 보고 받고 “국제적으로도 장 총리지명자의 임명이 한국사회에서 여성의 사회진출 확대의 계기가 될 것으로 주시했었는데 이런 결과가 나왔다”며 침통해 했다고 박선숙(朴仙淑) 대통령공보수석비서관은 전했다. 한 관계자는 “7·11 개각 때 총리 인선의 최우선 기준이 동의안 통과였는데 이마저 좌절된 터에 김 대통령의 낙담은 어느 정도이겠느냐”고 말했다.
박지원(朴智元) 대통령비서실장은 조순용(趙淳容)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 등 관계자들을 즉각 소집해 대책을 논의했다. 회의에서는 ‘획기적인 인사에 대한 정치권의 몰이해’라는 원망과 비판의 목소리가 쏟아진 것으로 전해졌다.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해도 너무한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느냐”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한 고위관계자는 “임기말 최악의 위기상황을 맞아 앞으로 원칙에 따라 대응하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는 논의가 많았다”고 회의 분위기를 전했다.
일부에서는 김 대통령이 지나치게 획기적인 인사에만 집착한 나머지 사전 인사검증이 철저하지 못했다는 자책도 나왔다. 그러나 임명동의안 부결을 ‘정파싸움의 결과’로만 몰아가려는 분위기가 강해 비서진들의 현실 인식이 국민 감정과 괴리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있었다.
청와대는 후임자 인선에 앞서 국정 공백 사태 등을 막기 위한 대비가 우선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신중 대처키로 했다. 박 공보수석도 “역사상 첫 여성총리에 지명된 능력있는 여성지도자의 인준이 부결된 데 대해 통절한 심정을 금할 수 없다”고 논평한 뒤 후임자 인선 등에 대해선 더 이상의 언급을 삼갔다.
청와대측은 무엇보다 동의안 부결 사태로 김 대통령의 국정 장악력이 떨어져 임기말 국정수행에 차질이 빚어질 것을 우려했다. 특히 우군으로 여겼던 민주당에서 상당수 이탈표가 나온 데 대해 충격을 받고 “앞으로 국정을 어떻게 마무리해야 할지 난감하다”고 걱정했다.
김 대통령이 1일 국무회의를 직접 주재키로 한 것이나, 박 공보수석이 “(임명 동의안 부결에도 불구하고) 김 대통령은 국정의 중심에 서서 흔들림없이 그 의무를 다할 것이다”고 강조한 것도 이 같은 우려를 뒷받침한다.
한 고위관계자는 “후임자 인선이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다. 이번 주중엔 힘들 것이다”며 “성직자를 임명한다면 모를까 누가 국회의 엄격한 검증과정을 통과할 수 있겠느냐. 더욱이 임기말 7개월짜리 총리를 누가 하려 하겠느냐”고 말했다.
이철희기자 klim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