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임기말 누수’ 막겠다면서…

  • 입력 2002년 8월 5일 18시 27분


정부 도처에서 물이 새고 있다. 작년 11월만 해도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임기말 레임덕은 없을 것이다”고 호언했으나 지금은 누가 봐도 임기말 행정누수가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 어제 국무조정실장이 중앙행정기관 감사관 회의를 긴급 주재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이번 회의에서 특히 강조된 것은 ‘비밀 유출 금지’였지만 과거 정부에서도 그랬듯이 이런 식의 금지와 단속만으로 임기말 누수를 막을 수는 없다.

그런데도 정부는 올해 초부터 끊임없이 비슷비슷한 회의를 하면서 비슷비슷한 대책을 내놓고 있다. 1월엔 공직 기강 확립을 위한 대대적인 사정 방침을, 4월엔 5대 취약 분야에 대한 기획감찰 방침을 밝힌 데 이어 지난달 초엔 국무총리 주재로 반부패장관회의를 열고 공직기강 점검 활동 강화 방침을 발표했다. 그리고 이번에 또 긴급 감사관회의를 가졌으나 역시 그 내용이 그 내용이다. 정부의 조급함과 위기의식을 헤아릴 수 있다.

그동안의 각종 지시와 지침이 실효를 거두지 못한 것은 물론이다. 역설적으로 효과가 없기에 ‘엄포’가 계속되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정부의 지시와 지침이 이렇게 먹혀들지 않는 것은 공직사회에 영(令)이 서있지 않은 탓이다. 공무원들이 현 정권의 ‘내일’에 희망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상당수 민주당 의원들조차 총리임명동의안에 부(否)표를 던진 상황에서 행정 누수는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결국 김 대통령은 행정 누수를 원천적으로 막으려 하기보다는 최대한 줄이려고 노력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를 위해서는 마음을 비우고 정리하는 자세로 국정에 임해야 한다. 다음 정권에 가능한 한 최선의 상태로 정부를 이양하기 위해 마무리에 전념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그 첫걸음은 총리 부재(不在) 상태를 시급히 해소하는 것이다. 행정을 통할하는 총리가 없는 파행적인 상황에서 공직기강만 강조하는 것은 공허하다. 국정을 그르치는 요인 중 하나가 고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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