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수교 10주년 ①]“웨이하이市 세금30% 韓人이 내요”

  • 입력 2002년 8월 5일 18시 53분


베이징의 '작은 서울' - 이종환기자
베이징의 '작은 서울' - 이종환기자
《24일로 한중수교 10주년을 맞는다. 중국은 그동안 눈부신 발전 속에서 한국의 중요한 정치 사회 문화적 파트너로 등장했다. 지난 10년 사이 중국은 한국의 두 번째 교역상대국으로 떠올랐고, 한국은 중국의 세 번째 교역상대국이 돼 있다. 세계시장에서의 경쟁도 치열하다. ‘한류(韓流)’가 중국에서 붐을 일으키는가 하면 한국에서는 중국열기가 뜨겁다. 중국으로 떠나는 조기유학열도 달아오르고 있다. 한편 ‘코리안 드림’을 꿈꾸는 조선족 동포들의 한국에 대한 애증의 골도 깊어만 가고 있다. 한중수교 10년이 가져온 굵직한 변화들을 시리즈로 조명해 본다.》

베이징(北京)시 동쪽 외곽에 있는 왕징(望京). 1990년대 후반부터 개발되기 시작한 베이징 최대 규모의 아파트촌이다. 여기서부터 2008년 올림픽 메인스타디움이 들어서는 시 북쪽 야윈춘(亞運村)까지 10㎞ 구간이 서울로 치면 강남에 해당하는 베이징의 ‘부촌(富村)’이다.

왕징에 한국인들이 모여들기 시작한 것은 1998년부터이나 불과 4년 만에 무려 1500가구의 한국인들이 모여 사는 베이징 속의 ‘작은 서울’로 변했다.

그 중에서도 왕징신청(望京新城)은 한국인들이 가장 밀집해 있는 지역. 이 아파트 단지로 들어서면 우리말 간판들이 줄줄이 이어진다. 세중부동산, 주황부동산, 신라부동산…. 우리말로 쓴 부동산중개업소 간판만 무려 10여개에 이른다. 중국판 ‘코리아타운’이다.

베이징뿐만 아니다. 톈진(天津) 칭다오(靑島) 선양(瀋陽) 상하이(上海) 등 대도시에도 크고 작은 규모의 ‘코리아타운’들이 형성됐다. 수교 10년이 가져온 대표적 변화의 하나다.

재중국한국인회(회장 신영수)에 따르면 중국에 진출해 있는 한국인은 20만명에 달한다. 상사주재원이나 투자진출 기업인 및 가족들이 15만명, 나머지 5만명이 유학생이다.

한국기업들이 가장 많이 진출한 성(省)은 산둥(山東)성으로 5만명에 이르며, 랴오닝(遼寧)성 3만명, 지린(吉林)성 2만8000명, 베이징 2만5000명, 톈진 2만1500명 순이다. 초기에는 동북 3성과 산둥성에 집중됐으나 지금은 상하이 광둥(廣東) 등지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베이징의 ‘작은 서울’〓“불편한 게 없어요. 한국식 자장면과 짬뽕도 배달되고 비디오는 물론 떡이나 과일까지 갖다줍니다. 태권도 도장도 있고 한국병원도 있어요.”

베이징의 왕징신청에서 PC방을 하고 있는 장흥석씨(43)의 얘기다. 그의 부인은 단지내에서 웅진싱크빅 한글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 왕징신청 안에는 한국물건들만 전문으로 파는 ‘한국성’도 만들어졌다. 여기에는 한국 생활용품을 파는 슈퍼마켓과 주방용품, 화장품 가게는 물론 미장원 안경점 노래방에다 심지어 찜질방까지 무려 26개의 가게가 입주해 있다.

한국 음식점들도 속속 들어섰다. 한식집인 한가위와 전주관에 이어 올 들어서는 솥뚜껑 삽겹살 전문점인 고향산천도 문을 열었다. 올 가을엔 설렁탕과 한정식 등 한국음식점 5개가 추가로 문을 열 예정이다.

모여 살다 보니 지난 월드컵 때는 응원열기도 대단했다. 스페인전이 끝났을 때는 누가 모이라고 한 것도 아닌데 1000명이 뛰쳐나와 ‘오 필승 코리아’를 열창해 중국 공안들이 배치되고 소방차가 출동하는 등 소란이 일었다.

▽한국이 만든 도시 웨이하이(威海)〓산둥성 웨이하이는 온 도시가 ‘코리아타운’이다. 한적한 어촌 마을이었던 웨이하이는 한국기업들이 모이면서 불과 10년 만에 인구 50만명의 신흥공업도시로 탈바꿈했다.

“한국 기업 800개사가 진출해 있습니다. 한국기업들이 고용하고 있는 인력이 시 전체 인구의 30%를 넘고, 우리가 내는 세금이 시 예산의 3분의 1 이상이 됩니다.”

웨이하이시 한국인회 김형기 회장(62)의 말이다. 김 회장은 한중수교 전인 1989년 수산물 가공업으로 이곳에 첫발을 내디딘 웨이하이 한국기업사(史)의 산 증인이다.

“처음에는 부분품을 만드는 임가공업체들이 주로 들어왔어요. 그러다가 완제품업체들로 바뀌었고, 지금은 첨단전자업체들이 들어오고 있어요.”

김 회장은 한중수교 10년을 맞아 한국인들의 대중 투자에도 적잖은 변화들이 있다고 설명한다. 그 자신도 수산물 가공무역을 그만두고 농업 및 축산업 분야에 진출했다.

웨이하이는 한국기업이 만든 도시답게 한국어 간판들이 도시 곳곳에 내걸려 있다. 특히 한국(상공)인회가 들어있는 웨이하이웨이(威海衛)호텔 뒷거리에는 한국말 간판 일색이다. 웨이하이에 상주하는 한국인은 5000명. 시 전체 외국인 거주자의 98%를 차지한다.

김 회장은 “수교직후 ‘골든 브리지’ 운항과 함께 인천과 첫 뱃길이 열린 웨이하이가 2년 전까지만 해도 매주 3회 한국과 연결됐으나 지금은 일주일에 무려 9편이 연결되고 있다”며 “중국과 한국이 한덩어리가 되고 있다”고 말한다.

▽좁아지는 황해〓수교 이전의 중국은 여행조차 쉽지 않은 곳이었다. 숙박시설은 열악했고 사회주의 경제의 그림자가 온 데 짙게 배어 있었다. 그러나 지난 10년 동안 모든 것이 바뀌었다. 중국은 한국의 제2의 경제파트너가 됐고, 한국은 중국의 3번째 교역상대국이 됐다.

지난해 양국을 오간 여행자수는 178만명. 한국인 130만명이 중국으로 갔고, 중국인 48만명이 한국을 찾았다. 올해는 6월 말 현재 각기 전년 동기 대비 43%와 17%가 늘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취항하는 운항도시와 편수도 각기 12, 14개 도시에 주당 81편씩에 이른다. 여기에 중국민항까지 합치면 그 수는 거의 배에 가깝다.

중국을 운항하는 외국항공사 가운데 취항도시와 편수가 가장 많은 나라가 한국이기도 하다. 박승화 대한항공 베이징지사장은 “올해 월드컵 경기로 인해 중국인들의 한국에 대한 관심이 아주 높아졌다”며 “이는 중국내에서 한국여행 붐이 일어나는 데 일조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과 한국 사이에 놓인 황해. 한때 용왕의 진노를 달래려고 심청이가 뛰어들기도 했던 이 바다는 수교 10년을 지나면서 작은 호수처럼 바뀌고 있다.

◆한중수교 10년 주요일지◆

△92년 8월24일〓수교

△92년 9월〓노태우대통령 방중

△94년 3월〓김영삼대통령 방중

△94년 10월〓리펑 총리 방한

△95년 5월 이홍구 총리 방중

△95년 11월〓장쩌민 주석 방한

△98년 4월〓런던 ASEM 정상회의에서 김대중-주룽지 회담

△98년 4월〓후진타오 부주석 방한

△98년11월〓김대중대통령 방중. 한중동반자관계 구축

△99년 8월 조성태 국방장관 방중

△99년 9월〓뉴질랜드 APEC회담서 김대중-장쩌민 회담

△2000년 1월 츠하오톈 국방부장 방한

△2000년 10월〓주룽지 총리 방한

△2001년 6월〓이한동총리 방중

△2000년 9월 뉴욕의 유엔밀레니엄회의서 김대중-장쩌민 회담

△2001년 5월〓리펑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 방한

△2001년 10월 상하이 APEC 회의에서 김대중-장쩌민 회담

△2001년 11월 브루나이 ASEAN+3 회의에서 김대중-주룽지 회담

△2001년 12월 김동신 국방장관 방중

◆한국 미용실 中여성에 인기, 태권도장도 북적◆

중국 속의 코리아타운에 대해서는 중국 언론들의 관심도 뜨겁다.

광저우(廣州)에서 발행하는 남방주말(南方週末)은 5월 말 ‘왕징한궈춘(望京韓國村)’이라는 제목 아래 이곳을 대대적으로 소개했다. 이 신문은 발행부수 1000만부가 넘는 중국 최고의 인기 주간지 중 하나다.‘한궈춘’은 ‘코리아타운’의 중국식 표현.

“남자 아이들 대여섯명이 우르르 몰려간다. 5, 6세짜리들이다. 그 뒤로 여자아이들이 뒤따른다. 말을 들으니 한국 아이들이다.”

이 신문은 왕징에서 “한국인을 못 만나면 이상한 일”이라며 한국인들이 이처럼 모여 사는 것은 “유교적 영향과 단결정신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왕징 지역에 사는 중국인들이 받는 문화적 충격도 상세히 소개했다. 이곳이 한국 문화가 중국인들에게 전파되는 창구 역할을 한다는 것.

“태권도장에 들어가니 10명의 어린이들이 연습하고 있다. 그런데 8명이 중국 어린이다. 등록한 150명의 학생 가운데 중국인이 120명이라고 경리가 소개한다”

한국 액세서리용품을 파는 가게는 중국인으로 붐비고 있고, 한국식 미용실도 한국의 새로운 스타일을 소개하는 자리가 돼 중국인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다고 이 신문은 소개했다.

이 신문은 끝으로 왕징의 한궈춘은 중국에 새로운 숙제를 던지고 있다고 전했다. 즉 몰려 살기 시작한 한국인들과 중국인은 어떻게 어울릴 것인가, 어디까지 허용할 것이며 이들이 가져다주는 경제적 기회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하는 숙제라는 것이다.

황유성 베이징특파원 yshwang@donga.com

이종환기자(국제부) ljhzip@donga.com

하종대기자(사회부) orionha@donga.com

구자룡기자(경제부) bon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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