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미국이 착공식과 함께 ‘채찍’을 들고 나온 것은 특별히 놀랄만한 일도 아니다. 경수로 건설 자체가 94년 북-미간 제네바기본합의에 따른 핵사찰의 대가이기 때문이다. 북한도 공사 지연에 대해 강한 불만을 토로하고 있지만, 93년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때처럼 핵사찰 자체를 거부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잭 프리처드 미국 대북담당 대사가 7일 착공식에 참석해 “북한은 미국과의 합의를 준수하지 않고 있다. 북한이 국제사찰을 허용하지 않을 경우 3, 4년 후에 끝날 공사가 더 지연될 수도 있다”고 강력 경고하고 나선 것은 사찰 프로세스에 대한 북-미간의 인식 차이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미국은 핵사찰에 3년 정도 걸리기 때문에 북한이 지금 당장 핵사찰을 수용해야만 2005년으로 예정된 핵심부품 인도가 가능하다는 입장이지만, 북한은 2, 3개월이면 충분하기 때문에 3년 뒤에 사찰을 받으면 된다고 맞서고 있다.
북한은 그보다 미국이 2003년 완공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며 먼저 그에 따른 보상을 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이 문제는 제임스 켈리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가 대북특사로 북한을 방문할 때 최우선의제로 다뤄질 전망이다. 프리처드 대사가 착공식에서 “켈리 차관보의 방북 때 나도 간다”고 말한 것은 이를 염두에 두고 한 말이다. 그러나 북한의 과거 핵의혹 검증 문제는 북, 미 양측 모두에 양보할 수 없는 핵심사안이어서 쉽게 의견 접근을 보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유석렬(柳錫烈)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는 “북한은 핵 개발에 대해 NCND(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 것) 입장을 유지하고 싶어하지만 그렇다고 체제가 망하는 선택을 하지는 않을 것이며, 결국에는 미국으로부터 체제안전보장을 받아내고 핵사찰을 수용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성동기기자 espr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