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신당추진 합의]중도파 "분당 막자"…싱겁게 결론

  • 입력 2002년 8월 9일 19시 11분



8·8 재·보선 다음날인 9일 민주당 지도부는 거의 만장일치로 신당 창당 추진 원칙에 합의했다. 신당 논의의 뚜껑이 열리는 순간 친노(親盧)-반노(反盧) 진영이 격돌, 파열음을 낼 것이란 예상과 달리 싱겁게 결론이 내려진 셈이다.

민주당이 ‘신당 창당’이란 공감대를 쉽게 끌어낼 수 있었던 1차적 이유는 한화갑(韓和甲) 대표와 박상천(朴相千) 정균환(鄭均桓) 한광옥(韓光玉) 최고위원 등 중도파가 연대해 벌인 사전정지작업이 주효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창당 전 ‘선(先) 후보직 사퇴’를 둘러싸고 극한대결 조짐을 보이던 노무현(盧武鉉) 대통령후보측과 비주류 양측을 “분당은 피해야 한다”는 명분으로 압박해 합의를 도출해내는 데 성공했다.

특히 신당 창당론에 ‘후보 교체’라는 암수가 숨어 있지 않느냐는 의심을 갖고 있던 노 후보는 한 대표의 측근인 문희상(文喜相) 대선기획단장이 직접 설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 단장은 6일 노 후보와 함께 승용차를 타고 재·보선 유세장으로 이동하던 도중 “재경선이든, 신당에서의 후보 경선이든 다를 게 없다. 신당 논의를 수용하지 않으면 대선기획단장직을 사퇴하겠다”고 압박했고, 결국 노 후보가 마음을 바꿨다는 후문이다.

여기에다 당초 노 후보의 선 사퇴를 강력히 요구해온 이인제(李仁濟) 의원계 등 비주류도 일단 관망하는 입장으로 돌아섰다. 안동선(安東善) 고문 등 일부 의원들은 9일 전격 탈당해 민주당 외곽에 신당 추진체를 구성한다는 복안까지 마련했었으나 “명분이 부족하다”는 반론이 제기됐다는 것. 자칫 분당 책임을 뒤집어쓸지 모른다는 우려도 작용했다.

비노(非盧) 성향을 보여온 중도개혁포럼 의원들이 9일 전체회의에서 ‘노무현 후보와 당 지도부가 이날부로 후보직에서 사퇴한 것으로 간주한다’는 완곡한 표현을 전제로 신당 창당지지 의사를 표명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날 회의에서 몇몇 의원들은 노 후보의 ‘선 사퇴’를 거듭 주장했지만 역시 신당 창당 논의의 맥을 끊어서는 안 된다는 논리에 밀렸다는 후문이다.

이같은 상황 전개에는 ‘오월동주(吳越同舟)’인 각 세력의 서로 다른 계산법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측면도 없지 않다.

노 후보는 ‘신당 창당’에 동의함으로써 ‘후보직’이라는 기득권을 유지할 수 있게 된 것이 가장 큰 소득이다. 여기에는 한나라당을 제외한 모든 정치세력이 참여하는 ‘거대 신당’ 창당의 실현 가능성이 현실적으로 높지 않은 데다 지지율 회복의 조짐도 있는 만큼 ‘시간은 나의 편’이란 판단도 작용하고 있다.

중도진영은 어떤 경우든 분당을 피해 외연을 확대해야 한다는 목표에 접근하게 된 셈이며 반노 진영은 후보사퇴 요구를 관철할 명분이 부족한 만큼 결전을 뒤로 미루기로 결정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할 듯하다.

특히 정몽준(鄭夢準) 의원의 지지율 급상승으로 ‘대안’ 모색이 쉬워졌다는 암묵적인 공감도 신당창당 논의에 탄력을 붙게 한 한 요인이 된 것으로 보인다.

김정훈기자 jnghn@donga.com

부형권기자 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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