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경선’ 미스터리 남겨▼
지금 민주당의 신당 창당 움직임을 보노라면 같은 느낌이 든다. 규합 대상을 ‘미래지향적 인사’니 ‘중도개혁 인사’니 하지만 속은 그렇지 않다. 한나라당 이회창 대통령후보에게 반대하는 세력을 다 모으자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지난번 대통령선거 때의 DJP연합 같기도 하고 그 전 3당통합 민자당을 보는 것 같기도 하다. 누가 뭐라 하든 신당 사람들 결국 당을 만들어낼 것이다. 붕어빵 찍어내듯 하는 정당만들기는 놀라운 기술을 보여주는 것이지만 한편 허술한 내부도 드러내기 마련이다. 그 대표적인 것이 후보 따로, 소속 의원 따로 현상이다. 대선후보야 건곤일척의 심정으로 정권쟁탈전에 나서겠지만 소속 의원들한테서는 그런 결연한 의지를 기대해서도 안되고 기대할 수도 없다. 그보다는 2004년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국회의원직을 유지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 이들의 최대 관심사다. 이것이 선거용 ‘비빔밥 정당’의 변치 않는 속성이다. 두고 보라. 신당의 당권과 그 운영방식을 둘러싸고 이른바 중진들의 총선 대비용 포석까지 엉켜 기막힌 담합이 분명 이루어질 것이다. 이들의 보다 현실적인 관심은 당권이요 국회의원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지금은 정치적 보호막이 절실한 전환기 아닌가. 이런 함정은 신당 대선후보만이 아니라 한나라당 이 후보에게도 똑같이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대선과 다음번 총선을 함께 놓고 보아야지 그렇지 않다가는 훗날 내부적으로 큰 낭패를 볼 수 있다는 말이다.
신당 이야기는 그렇다 치자. 통박하고 싶은 것은 신당 움직임에서 엿볼 수 있는 정치권력의 오만이다. ‘혁명적인 정치개혁’이라고까지 치켜세웠던 국민경선 결과를 한순간에 엎어 버린 것은 ‘희화화’가 아니라 전면 부인이다. 한마디로 없었던 일로 해도 괜찮다는 뜻인 모양인데 그렇다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는 말도 된다. 경선 초 ‘노풍’이 한창일 때 노무현 후보는 스스로 ‘기득권 포기’란 당시로는 대단히 아리송한 표현을 썼다. 그러다가 민주당 대통령후보란 엄청난 기득권이 걸린 신당 창당에 동의한 것을 보면 아무래도 심상치 않다. 필유곡절이다. 지금도 정치판에선 당초 7명의 경선후보자가 나섰다가 이런저런 이유로 도중하차 또는 ‘자진사퇴’하고 종국엔 2명만이 남았던 민주당 국민경선 뒤에 가려져 있는 ‘인위성’을 지적하고 있다. 어쨌든 공당의 결정을 손바닥 뒤집듯 해버리는 정치권력의 오만함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그래도 표를 얻을 수 있다고 믿는 모양인데, 하기사 이 권력이 민심 우습게 보아 온 것이 한두번인가.
권력이란 요약하자면, 국민의 동의에서 비롯되는 것이고 그것은 바로 선거 아닌가. 그렇다면 선거 결과에 순응하는 것이 정권이 할 일이다. 그런데 이 정권은 민의수렴이라는 기본수칙을 번번이 벗어났다. 대표적 예로, 2000년 4·13총선에서 집권 민주당은 한나라당에 패배했으면서도 자민련에 자기 당 의원을 꿔주는 기막힌 코미디를 연출했다. 유권자를 깔보는 그런 오만이 과연 정상적인 집단이라면 가능한 것인가. 그 후로도 4번의 각종 선거에서 모두 ‘완패 심판’을 받았다. 결정적 패인이 권력비리인데도 한참 허리를 굽히고 처방책을 내놓아야 할 집권세력은 이젠 뻔뻔해졌다. 아예 ‘나 몰라라’식이다. 어디 그뿐인가. 언론의 기사 판단을 자기 입에 안 맞는다고 험담을 퍼붓고 장외투쟁 운운하며 윽박지르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그리고 지금 오로지 ‘병풍’ 부풀리기에만 매달려 있다. 매서운 국민의 심판을 피해 보자는 것인데 이제 결말을 지켜보자.
▼밀릴 땐 밀려야 한다▼
권력의 오만은 과연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역설적이지만 이 정권의 오만은 자신감이 아니라 초조함 때문이다. 집권세력에서 종종 듣는 ‘여기서 밀리면 끝까지 밀리고 만다’는 절박감이 바로 그것이다. 그럴 때 나오는 것이 악수(惡手)요 자충수(自充手)란 것을 왜 모르는가. 군사정권도 호헌론을 내세웠다가 6·29선언으로 물러섰다. 그렇게 혹독히 매도한 군사정권보다 못한 정권이 되겠다는 것인가. 밀릴 땐 밀릴 줄 알아야 한다. 그것이 그나마 자존심이라도 지키면서 물러나는 길이다.
최규철 논설주간 kih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