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多者구도?]이회창 “多多益善”·노무현 “양자대결”

  • 입력 2002년 8월 18일 19시 00분


《정치권의 신당 논의가 급물살을 타면서 12월 대통령선거 구도가 ‘다자(多者)구도’로 전개될 가능성이 높아지자 정치권의 각 세력은 정치지형의 변화가 선거에 미칠 파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특히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민주당 노무현(盧武鉉) 대통령후보 진영은 신당논의가 ‘발등의 불’로 떨어지자 대응책 마련에 착수했다.》

▼이회창 "다다익선"▼

▽반 이회창 구도를 무력화하라〓“여러 변수가 있겠지만 다다익선(多多益善)이죠.”

한나라당 김문수(金文洙) 기획위원장은 18일 다자구도에 대해 이처럼 한마디로 정리했다.

새롭게 조성될 다자구도가 ‘이회창 대 반(反) 이회창’ 구도를 바탕에 깔고 있는 만큼 반 이회창 세력이 분열할수록 이 후보 입장에서는 손해볼 것이 없다는 논리다. 여기에는 이 후보의 굳건한 지지기반이기도 한 ‘반 DJ(김대중·金大中 대통령)’표의 이탈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판단도 작용하고 있는 듯하다.

이 후보의 한 측근은 “87년 대통령 직선제 실시 이후 92, 97년 대선 모두 다자구도로 치러졌지만 항상 분열한 쪽이 패배했다”고 설명했다.

민주당 노 후보와 정몽준(鄭夢準) 의원의 주 지지층이 20, 30대 젊은층으로 겹치고 있다는 점도 이 후보 진영이 꼽는 플러스 요인이다.

결국 노 후보와 정 의원이 모두 출마할 경우 젊은층 표와 부동층 표가 분산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다만 울산에 지역구를 둔 정 의원이 ‘영남주자론’의 깃발을 드는 상황은 이 후보 입장에서는 걱정스러운 대목이다. 이 후보가 다져온 영남권 표가 분산될 경우 대선전략 전체구도에 큰 자질을 빚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이 18일 현 정권과 현대그룹 유착의혹을 본격 제기한 것도 정 의원을 김 대통령의 ‘대리인’으로 몰아붙여 혹시 거세질지 모를 영남주자론의 불길을 사전 차단하겠다는 전략이다.

▼노무현 "양자대결"▼

▽양자(兩者) 구도를 만들어라〓노 후보는 18일 자신의 홈페이지에서 “정 의원과 재경선을 하는 것이 좋겠다는 쪽으로 이미 입장을 정리했다”며 “어차피 12월 대선 때 이회창 후보와 맞서야 하기 때문에 이기는 구도를 만들기 위해 재경선을 하는 것이 옳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정 의원이 ‘제3신당’과 합칠 경우 내가 취해야 할 여러 가지 태도는 달라질 것이며 정 의원에 대한 평가도 새롭게 해야 할 것”이라고 밝혀 정 의원과 맞서는 상황이 닥칠 경우 정면 대응할 방침임을 분명히 했다.

이 같은 입장표명에는 여러 측면에서 대립할 수밖에 없는 노무현-이회창 양자 구도가 대선 승리의 필수조건이라고 보는 노 후보측의 판단이 깔려 있다.

노 후보와 지지층이 겹치는 정 의원을 사전에 뛰어넘어야 한다는 얘기다.

민주당 내에서도 “3자 구도가 되면 노 후보든, 정 의원이든 누구도 이 후보를 이기기 어렵다”는 전망이 대세다.

그러나 당내 일각에선 대선구도가 지지세의 향배에 따라 자연스럽게 양자구도로 정리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이해찬(李海瓚) 의원은 “현 상황으론 3자구도가 될 가능성이 높고, 이럴 경우 이 후보가 40%, 노 후보와 정 의원이 각각 30%를 차지할 것이다”며 “그러나 (노 후보와 정 의원 중) 어느 쪽으로든 4 대 2 구도로 우열이 가려지면 후보 단일화 가능성이 자연스럽게 높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연욱기자 jyw11@donga.com

부형권기자 bookum90@donga.com

▼한나라 “DJ가 신당 기획”… 청와대 “정치공세”▼

한나라당은 18일 민주당의 신당 창당 추진과 관련해 ‘청와대 배후설’을 제기했고 청와대측은 이를 “무책임한 정치공세”라고 반박했다.

서청원(徐淸源) 대표는 기자간담회에서 “87년 평민당 창당 때부터 지역갈등의 골을 만들어온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상습적으로 창당을 하고 있다. 부패와 무능 비리로 낙제점 받은 민주당이 이를 은폐하고 재집권을 위해 새 옷을 입으려 하나 누더기 옷이 분명해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할 것이다”고 비난했다.

남경필(南景弼) 대변인은 민주당 안동선(安東善) 의원이 탈당 선언을 하면서 신당 창당과 관련해 ‘청와대 기획조정설’을 제기한 점을 들며 “보이지 않는 손의 존재가 확인됐다”고 공격했다.

김영일(金榮馹) 사무총장도 “정치에 불간섭하고 공정하게 대선을 치르겠다는 대통령의 말이 거짓이며 우리 당이 제기해온 ‘정치공작’이 사실로 드러난 것이다”고 거들었다.

한나라당이 ‘DJ 신당 배후설’을 거듭 제기하는 이면에는 향후 어떤 형태의 신당이 탄생해도 김 대통령과 묶어 공격하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다는 게 당 안팎의 분석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에 대해 “정치권에서 일만 있으면 청와대를 들먹이는데 청와대는 그러저러한 정치권의 일에 관심을 갖고 있지 않으며 관심을 가질 만한 여력도 없다”고 반박했다.

박성원기자 swpark@donga.com

▼97년 대선구도…후보 우열따라 합종연횡▼

97년 15대 대통령선거 레이스는 불과 4개월 사이에 3자구도→5자구도→3자구도로 급변했다.

7월21일 신한국당이 이회창(李會昌) 후보를 선출했을 당시만 해도 대선 구도는 이회창 후보-국민회의 김대중(金大中) 총재-자민련 김종필(金鍾泌) 총재의 3자구도였다.

그러나 8월12일 조순(趙淳) 당시 서울시장이 대선출마를 선언한 데 이어 추석 연휴 직후인 9월13일 이인제(李仁濟) 당시 경기지사가 신한국당을 탈당해 대선출마를 선언하면서 5자구도로 바뀌었다.

당시 대선구도가 다자구도로 바뀐 결정적 이유는 이회창 후보가 아들 병역 문제로 지지도가 10%대까지 급락했기 때문. 당내에서 후보교체론이 급부상하면서 경선에서 2위로 패배했던 이인제 후보의 지지율이 젊은층의 압도적 지지에 힘입어 30%대로 급상승했고, 조 시장 역시 대선출마 선언 직후 20%에 육박하는 지지도를 보였다.

그러나 대권 레이스가 본격화되면서 후보간의 우열이 드러나자 정치권의 각 세력은 합종연횡에 나섰다. 먼저 지지율에서 선두를 달리던 김대중 후보와 지지율 한자릿수에 머물던 김종필 후보가 10월31일 역사적인 DJP 단일화에 합의했다. 이어 지지율 10% 아래로 추락한 조순 후보도 대권 레이스를 중도 포기하고 11월7일 이회창 후보와의 단일화에 합의했다.

이때부터 이회창 후보의 지지도는 급속도로 회복세에 접어들었다. 또 국민회의와 한나라당 양쪽으로부터 ‘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의 자금지원설’ 협공을 받은 이인제 후보의 지지도가 하락하면서 대선 막판구도는 김대중-이회창 후보의 양자대결구도로 바뀌었다.

김정훈기자 jng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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