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적자금 국정조사 '겉핥기' 우려

  • 입력 2002년 9월 4일 18시 43분


“법사위와 국방위에도 출전해야 하고 재경위는 내 소관이고 국정조사까지 해야 하니 1인 4역인 셈이다.”(한나라당 A의원)

“법사위 간사에 정보위도 챙겨야 하는데 부의장 따라 평양에도 가야 한다. 공적자금 국정조사까지 맡아 밤을 새워도 모자랄 판이다.”(민주당 B의원)

156조원의 국민 혈세(血稅)가 들어간 공적자금에 대한 국정조사 일정이 국정감사와 겹치는 데다 추석 연휴와 부산아시아경기까지 끼어 있어 준비 소홀로 인해 ‘원초적인 부실 조사’가 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일고 있다.

▽국감과 겹치고 청문회는 사흘만〓가장 큰 문제는 16일부터 10월 5일까지 진행되는 국감과 기간이 겹친다는 점. 공적자금 예비조사 기간이 3일부터 10월 3일까지여서 공적자금 국조 특위위원들은 20일 동안은 국감도 하고 국정조사도 해야 하는 ‘겹치기 출연’이 불가피하다.

공적자금과 연관된 재경위와 정무위 소속 일부 의원들은 “별 문제 없다”고 장담하지만 다른 상임위 소속인 특위 위원들은 국감이나 공적자금 국정조사 중 하나는 소홀히 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국조특위의 한 의원은 “공적자금 국정조사 한다고 국감을 대충 때울 수도 없어 고민이 많다”고 털어놨다.

한나라당은 특히 시간에 쫓기는 바람에 공적자금 비리를 새롭게 파헤치기보다는 외부 제보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고 푸념하고 있다.

게다가 청문회는 10월 7일부터 9일까지 3일밖에 안 된다. 기관보고(10월 4, 5일) 이틀을 포함하더라도 겨우 5일 정도가 실질적인 국정조사 기간인 셈이다.

▽‘소나기는 피하자’는 양당의 속셈〓이처럼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일정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공적자금 국정조사에 전격 합의한 것은 양당의 이해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이회창(李會昌) 대통령후보 아들의 병역비리 공세에 시달려온 한나라당은 공적자금 국정조사를 통해 병풍에 쏠린 국민의 관심을 희석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한나라당의 한 초선 의원은 “당 지도부가 졸속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큰 공적자금 국정조사를 서두르는 의도를 모르겠다”고 의아해했다.

민주당에서도 ‘공적자금 문제는 현 정권 임기 안에 한번 맞고 가는 것이 낫다’는 분위기가 우세하다. 한 의원은 “새 정권 들어 공적자금 국정조사를 하면 더 불리하다”면서 “증인문제만 양보하지 않는다면 우리로서도 별로 잃을 것이 없다”고 말했다.

최영해기자 yhchoi6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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