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북한을 방문하면 이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북한에서는 분명히 러시아나 중국에서 일어난 본질적 개혁과는 다르지만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이 변화의 중요성을 낮게 평가하는 것은 잘못된 분석이다.
먼저 소작인 또는 농민 시장의 출현과 확대를 통해 북한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다양한 혁신이 눈에 띈다. 내가 학생 시절 때만 해도 금지돼 있던 이 같은 시장은 90년대 들어 생겨나기 시작했다. 판단컨대 북한에서 이 시장은 북한 주민들의 일상생활에 중요한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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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북한에서 시장은 일반인들의 주요 물자제공 창구가 됐을 뿐만 아니라 경제생활의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됐다. 적정 가격으로 제공되고 있는 상품에는 쌀과 생활용품을 비롯해 필수적인 식량과 물품들이 포함돼 있다. 당초 식량과 물품을 제공하는 또 다른 창구로 보조구실만을 하던 이 시장은 차츰 국영 상업 및 분배시스템을 대체할 만한 사회경제적 기관이 됐다.
최근에는 단순한 수익창출 활동이 아니라 기업가적 활동도 나타나고 있다. 결과적으로 많은 부자들과 고급 레스토랑, 상점이 생겨났고 외국 화폐가 일정하게 유통되고 있다. 이들을 위해 평양에는 50레인을 갖춘 초현대 시설의 볼링장이 들어섰다. 또 흥미로운 것은 북한에서 달러가 공식적으로 통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평양 내 모든 대형 상점에는 환전소가 있다.
이 같은 현상을 과소평가하거나 인정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은 북한 정부가 7월에 단행한 경제에 관한 일련의 놀라운 혁신들-카드 배급 규모를 크게 줄이고 임금 및 상품 가격을 올리는 한편 원화 대비 달러 환율을 고정환율 대신 변동환율로 바꾼 것-을 보고 당혹스러울 것이다. 이 같은 혁신의 핵심은 상품과 돈의 관계를 크게 강화한 것이다.
북한의 경제성장 과정을 면밀히 지켜본 전문가라면 이 같은 일련의 과정이 예전부터 진행돼 온 북한 경제의 발전에 따른 결과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새 시대의 주목할 만한 사례는 농산업 분야에서 근대적인 기술이 도입된 것이다. 이는 유엔과 비정부기구가 개발한 녹색혁명 경험과 권고안을 활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북한 당국은 독자적인 주체농법을 사용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중요한 것은 방법의 제목이 아니라 결과다. 실제로 실용적인 결과들이 나오고 있다.
오늘날 북한에서는 사료값이 싸고 비교적 이른 시간 안에 좋은 상품을 얻을 수 있는 가축과 물고기를 기르기 시작했다. 시골로 가면 염소떼를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다. 염소는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이 직접 방문한 일부 시설을 포함해 근대적 시설의 대형 농장이나 개인농장에서 사육되고 있다.
나는 북한 국적을 가진 일부 오스트리아 농부들이 염소 사육에 활발하게 참여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또 다른 효율적 사업은 성장 속도가 빠른 열대 메기 사육이다. 이것들은 따뜻한 물에서만 살기 때문에 양육을 위해서는 구월산에서 멀지 않은 온천물을 쓴다. 이 맛 좋은 고기는 소매가격으로 판매된다. 러시아대사관 직원들도 맛볼 기회가 있었다.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북한과 러시아의 우호관계 속에서 북한 정부가 2001년 11월 차량 2대분의 살아 있는 메기를 우리 대사관에 보내온 바 있다.
물론 이 같은 혁신이 북한의 식량 부족을 단기간에 바꿔놓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성급한 관측일 것이다.
분명한 것은 가까운 시일 안에 북한이 여전히 국제사회의 인도적 원조를 필요로 할 것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내가 제시한 사례들은 북한이 세계의 기술 발전안과 권고안을 수용할 준비가 돼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정리〓곽민영기자 havefun@donga.com
박혜윤기자 parkhye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