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북-일 정상회담에서 북한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이 일본인 납치사건을 시인한 것이 계기가 됐다. 한나라당은 북한이 일본인 납치사건을 인정하면서도 한국인 국군포로와 납북자에 대해선 ‘노 코멘트’로 일관하는 태도를 문제삼았다. 김대중(金大中) 정부의 협상력 부재가 도마 위에 올랐음은 물론이다.
이회창(李會昌) 대통령후보는 19일 특보단 임명장 수여식에서 “정부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확보에 모든 힘을 기울여야 한다”고 운을 뗀 뒤 “정부는 국군포로와 납북자의 생사 여부를 확인하고 북측에 생존자 송환을 강력히 요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후보는 또 “KAL기 폭파사건과 아웅산 테러사건 등 북한이 자행한 테러행위에 대해서도 북측으로부터 사과를 받아야 한다”고 정부측을 압박했다.
한나라당의 총공세는 김 위원장의 답방 가능성 등 정부 주도의 남북관계 드라이브에 ‘맞불’을 놓는 성격이 짙다. 이런 기류 탓인지 이날 당 선거전략회의는 현 정부의 대북정책 성토장을 방불케 했다.
서청원(徐淸源) 대표는 “일본은 납치사건에 대해 사과를 받았지만 우리는 정상회담에서 납북어부와 국군포로 문제들을 하나도 해결하지 못한 채 넘어가면서 경의선 철도연결에만 매달리고 있다”며 “대통령은 잘못된 회담에 대해 사과하라”고 주장했다.
김영일(金榮馹) 사무총장은 “일본은 실리외교인데 반해 우리는 구걸식, 퍼주기식 외교로 너무 대비돼 온 국민이 현 정부의 대북정책에 허탈감을 느끼고 있다”고 지적했고, 이상배(李相培) 정책위의장도 “현 정부는 국민은 안중에 없고 북한 눈치만 보며 퍼주기를 자행하고 있다”고 가세했다.
당 정책위는 이날 발표한 자료에서 “98년부터 올 9월 현재까지 대북 지원액은 1조3500억원으로 김영삼(金泳三) 정부 시절의 4.1배에 달하고, 이달부터 봇물 터진 대북지원의 배경엔 대선을 겨냥한 신북풍 의혹이 짙다”고 주장했다.
한나라당은 김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커넥션 의혹까지 거론했다. 황준동(黃俊東) 부대변인은 “일본 언론들은 김 위원장이 납치사건을 ‘특수기관의 망동’으로 치부한 것은 4월 방북한 임동원(林東源) 대통령외교안보통일특보의 조언에 따른 것이라는 의혹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민주당의 한 고위 당직자는 “한나라당은 북-일 정상회담이 가져다 준 한반도 해빙 무드는 전혀 간과한 채 오직 정치 공략적인 목적으로 김 대통령의 햇볕정책까지 싸잡아 공격하고 있다”며 “한나라당의 통일정책과 대북관은 과연 무엇이냐”고 비난했다.
정연욱기자 jyw1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