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발표는 번지르르하게〓99년 5월 당시 유종근(柳鍾根) 전북도지사는 남원시 이백면에 건설 예정인 약수온천 개발사업에 4000만달러(약 480억원)의 외자를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스위스의 체파스(CEPAS)사가 1차로 4000만달러를 투자해 국제적인 규모의 온천리조트를 만들기로 합의했다는 것. 그러나 이 사업은 3년여가 지난 지금까지도 전혀 진척이 없고 2000년 5월 이후에는 이 회사와의 연락마저 끊긴 상태다.
이에 앞서 전북도는 미국의 세계적인 팝가수 마이클 잭슨이 부도 난 무주리조트를 인수할 계획이라고 발표해 국제적인 주목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이 역시 과대 포장이었다는 게 금세 밝혀졌다.
경남도는 99년 일본 도요타자동차의 부품공단을 경남 사천시 진사공단 10만여평에 유치하겠다고 발표했다. 투자자들은 최소 1억달러, 최고 3억달러를 투자할 수 있다고 제안하기도 했으나 얼마전 “중국에 공장을 세우기로 했다”는 한마디만 통보하고 연락을 끊어버렸다.
인천시는 99년 2월 미국의 CWKA사와 용유 무의지구 213만평에 35억달러를 투자해 종합해양관광단지를 조성하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단 하루만에 CWKA사가 언론에 보도됐다는 이유를 들어 계획을 취소하는 바람에 망신만 당했다.
충남도는 97년 10월 관광레저 전문회사인 인피니티 국제그룹과 공동으로 안면도관광개발㈜을 설립하고 본격적인 안면도 개발에 나섰다. 도는 투자회사 관계자들과 함께 공동 기자회견을 갖고 머린월드와 호텔, 골프장, 노인휴양단지가 포함된 화려한 청사진을 내놨다.
안면도는 그야말로 ‘꿈의 관광지’로 변할 전망이었고 투기꾼들이 오가는 가운데 땅값도 들썩거렸다. 그러나 98년 7월 미국의 투자회사인 월링턴사가 신용을 문제삼아 인피니티사에 자금을 제공하기로 한 약속을 철회함에 따라 자본 유치가 어려워졌고 결국 외환위기를 맞으면서 투자 분위기가 위축되는 바람에 무산되고 말았다.
▽외자 유치는 단체장 홍보용(?)〓외환위기 이후 외자유치가 단체장의 능력을 평가하는 주요 잣대가 되면서 자치단체들이 경쟁적으로 유치에 나섰지만 ‘영양가’ 있는 실적을 올린 경우가 드물고 주민 홍보용이 대부분이었다.
각 시도가 수십억달러의 외자를 유치했다고 밝힌 경우도 경남 등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기업이 직접 유치한 것이고 그나마도 실적이 미미한 실정이다.
경기도는 98년 아남반도체가 미국기업에 25억달러 규모로 매각된 금액을 외자유치 금액으로 발표했다가 해당 기업의 항의를 받기도 했다.
투자의향서(MOU)만 체결되면 실제 투자 여부와는 상관없이 투자 실적으로 잡고 이를 근거로 자치단체장들이 “외자를 이만큼 유치했다”며 자랑하고 다닌 경우도 많았다.
▽외자 유치의 다른 문제들〓전국의 자치단체들이 경쟁적으로 외자유치에 나서면서 과당 경쟁으로 유치가 무산되거나 예산 낭비 등 부작용이 발생하기도 했다.
또 거액의 외자를 유치해 주겠다며 자치단체에 접근하는 사기성 높은 국제 브로커들에 의해 사기를 당하는 경우도 종종 생기고 있다는 것.
외자유치 추진 과정에서 보여주는 투명하지 못한 절차와 아무 업체나 받아들이는 ‘묻지마 유치’, 국내 기업과 지나치게 차이가 나는 특혜 제공 등도 문제로 지적됐다.
충남도는 국제무기상인 아드난 카쇼기의 32억달러 안면도 투자를 재추진하면서 이를 투명하게 하지 않아 투자 계약이 한 차례 연기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다.
주민들은 개발과정의 소외를, 환경단체는 이익만을 추구하는 다국적기업에 의한 무분별한 개발과 환경 파괴를 우려하고 있어 외자 유치를 둘러싼 논란도 계속되고 있다.
경남도가 지난해 진사공단에 다국적 담배회사인 BAT를 유치한 것과 관련해 지역 농민과 환경단체들로부터 “별다른 실익이 없는데도 실적에 급급해 선진국에서는 설립을 허용하지 않는 담배공장까지 유치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외국인 투자촉진법의 허용사항이라 하더라도 외국계 기업체에는 수십억원대에 이르는 수만평의 공장용지를 50년간 무상 사용토록 하면서 국내기업에는 이런 혜택을 주지 않는 것은 형평성에 맞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주대 이방식 교수(45·경영학부)는 “외국인 투자에 대한 파격적인 특혜를 줄 경우 역효과가 날 수도 있다”며 “지자체의 외자유치가 국내외 투자자들이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도록 시장경쟁원리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추진돼야 한다”고 말했다.
▽‘기획 유치’와 전문인력 양성을〓앞으로의 외자유치는 각 자치단체가 필요로 하는 산업부문이나 업종별로 유망 중소기업에 투자하려는 외국인 투자자들을 선정해 찾아 나서는 ‘기획 유치’로 전환돼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짧은 시간에 불특정 다수의 기업을 상대로 갖는 투자유치설명회는 성공 확률이 낮을 수밖에 없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치단체들은 전문 인력과 정보 부족 등으로 여전히 투자유치설명회에 매달리고 있는 실정이다.
자치단체 유치 담당자들은 “의욕만 앞설 뿐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다”고 하소연한다. 외국어 능력도 못 미치는 데다 외국인 투자와 관련된 법률, 조세, 금융, 관세 등에 대한 전문지식이 없기 때문이다.
또 지방정부의 자율권과 재량권을 늘리고 재정자립도를 높여 자치단체가 지역에 대한 기여도 등을 고려해 자율적으로 투자업체에 각종 혜택을 부여할 수 있는 여지를 더 주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유능한 인력을 확보하기 위해 공무원에게도 파격적인 보상이 가능하도록 공무원 보수규정이 바뀌어야 하며 중국처럼 외자유치에 따른 인센티브제도 시행해볼 만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전주〓김광오기자 kokim@donga.com
대전〓지명훈기자 mhjee@donga.com
창원〓강정훈기자 man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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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자유치 모범 지자체
2000년 5월 사천시 사남면 진사공단 외국인 투자구역에 입주한 일본 전자업체 다이요 유덴(太陽誘電)사의 경우 사업계획서 접수부터 착공까지 49일밖에 걸리지 않았다.
이는 경남도가 사업계획서를 접수받자마자 지원기획단을 만들어 각 해당 기관으로 하여금 건축허가와 폐수처리, 공단개발계획 등의 절차를 직접 처리하도록 해줬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 회사는 현재 1400명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으며 인건비로 매달 10억여원을 쓰고 있다.
경남도는 당시 마산 자유지역에 공장을 갖고 있던 이 회사가 멕시코에 공장 건설을 추진중인 사실을 알고 투자유치와 실무진을 일본으로 보내 10여 차례에 걸쳐 설득한 끝에 유치에 성공했다.
대전시는 갑천 천변고속화도로 건설을 추진하면서 사업비가 모자라자 2001년 프랑스 이지스사와 싱가포르 화홍공사로부터 1단계로 1675억원을 유치했다.
이 회사는 당초 인도네시아 고속도로 건설에 투자할 예정이었으나 인도네시아의 외환위기로 다른 투자자를 찾던 중 대전시와 연결됐다. 이 회사는 도로 완공 뒤 500원의 통행료를 30년간 받아 투자금액을 회수할 예정이다.
■지자체 "외자유치 전문가를 모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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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도 경제통상국 오춘식(吳春植·46) 투자유치과장은 산업자원부와 한국무역투자진흥공사(KOTRA)가 10일부터 13일까지 일본 도쿄(東京)에서 주관한 투자설명회에 다녀왔다. 오 과장은 설명회에서 일본 기업인들을 상대로 정보기술(IT)산업과 관련된 경남지역의 인프라에 대해 설명하고 투자 유치에 전력했다.
전남도 경제통상실 정태현(鄭泰鉉·49) 투자유치심의관도 같은 기간, 같은 장소에서 전남도를 대표해 투자유치에 적극 나섰다.
오 과장과 정 심의관은 순수 공무원이 아니다. 오 과장은 삼성테크윈, 정 심의관은 포스코(POSCO) 소속으로 월급은 기업에서 받고 일은 자치단체에서 하는 ‘반공반민(半公半民)’ 신분이다.
자치단체들이 외자 유치를 보다 효율적으로 행하기 위해 기업체 간부를 투자유치 부서의 책임자로 앉힌 것.
외자 유치에 열의를 보여온 김혁규(金爀珪) 경남도지사는 98년 8월 당시 삼성테크윈 창원공장의 이상목(李商睦) 부장을 투자유치과장에 앉혔고 오 과장은 2000년 8월 바통을 이어받았다. 오 과장은 계약기간 2년을 넘겼으나 도지사의 권유로 3년째 ‘서기관급 공무원’으로 근무 중이다.
박태영(朴泰榮) 전남도지사는 경남도를 벤치마킹해 민선 3기 출범과 함께 포스코의 부장이던 정씨를 경제통상실 투자유치심의관으로, 과장인 홍대승(洪大勝·42)씨를 투자진흥과장으로 영입했다. 홍 과장 역시 최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의 투자박람회에 다녀오는 등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이들은 모두 영어나 일어 등 외국어에 능하다. 또 파견 근무를 하고 있는 기관에서 높은 업무 평가와 함께 교육적 효과도 크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에 따라 다른 일부 자치단체들도 외부인 영입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오 과장은 “외국 기업이나 외국 자본을 유치할 땐 사전에 충분한 정보를 갖고 접근해야 실패할 확률이 낮다”며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공무원들이 외국인투자자의 마음이나 기업의 시스템을 간파하는 능력을 키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외국 기업체나 자본을 지방에서 유치하는 데는 여전히 걸림돌이 적지 않다”며 “특히 외국 기업들에 부지에 대한 부담을 최대한 줄여주는 게 급선무”라고 말했다.그는 외국인 투자지역이나 외국인 기업 전용단지의 경우 지금은 정부에서 조성비용 전액을 부담하고 있지만 앞으로는 자치단체와 비용을 분담하려는 움직임이 있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오 과장은 “자치단체로 하여금 일정 비용을 부담하게 할 경우 가뜩이나 재정 상태가 열악한 자치단체의 외국기업 유치가 더욱 위축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창원〓강정훈기자 manman@donga.com
광주〓정승호기자 shj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