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상선은 이날 2000년 당시 재무제표를 다시 검토해 구체적인 자금상환 명세를 제시했다.
“2000년 6월 산업은행에서 4900억원을 차입한 건 사실이지만 이는 당시 차입금 상환 등 운용자금으로 썼으며 이 과정에서 현대아산에 대한 지원은 일절 없었다”는 해명이다.
현대아산도 ”당시 현대상선에서 자금을 지원받은 적이 없다”며 “정상적인 관광대가 외에 한푼도 북한에 주지 않았다”고 밝혔다.
▽누구 말이 진실인가〓엄 의원과 현대상선측의 주장이 워낙 엇갈리고 있어 한쪽은 잘못된 주장을 하고 있다고밖에 할 수 없다.
현재로서 양측 주장 진위(眞僞)를 확인할 수 있는 가장 분명한 방법은 당시의 입출금 명세를 추적해보는 것이다. 일단 4900억원을 대출받았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일치하므로 사용 명세만 확인되면 의문이 풀린다.
이에 대해 현대상선측은 “기업어음(CP) 상환에 1740억원, 용선 비용으로 1500억원, 선박 구입에 대한 차입금 상환에 590억원, 회사채 상환에 170억원 등을 썼다”고 밝혔다. 현대상선의 해명이 매우 구체적이라 이를 뒷받침할 관련 물증만 제시하면 신빙성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불과 2년 전이라 입출금 기록이 그대로 남아 있어 이를 확인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아 보인다.
또 현대상선이 4900억원을 빌린 2000년 6월 당시는 회사가 자금압박이 심한 때여서 빌린 돈을 딴 데 빼돌릴 만한 처지도 아니었다.
그러나 김충식 당시 현대상선 사장이 “현대상선이 쓴 돈이 아니니 정부가 갚아야 한다”는 말을 했다는 점 때문에 엄 의원의 주장을 무시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끊임없는 비밀 지원설〓현대상선이 ‘실증 자료’를 제시한다 해도 현대를 통한 대북 비밀지원설의 모든 의혹이 가라앉을지는 미지수다. 이번 엄 의원의 주장뿐만 아니라 그전부터 북한에 대한 비밀 지원설이 끊이지 않고 제기돼 왔기 때문이다. 일단 이번 의혹의 경우 해명의 열쇠를 쥐고 있는 김충식 전 사장이 귀국해야 분명한 매듭이 지어질 전망이다.
엄낙용 당시 산업은행 총재 등 관련자와의 대질도 필요하다. 그러나 신병치료차 미국에 머물고 있는 김 전 사장은 25일 밤늦게까지 접촉이 안 되고 있다. ▽대북지원이 사실일 경우〓북한 지원설이 사실일 경우 경제계에는 큰 파문이 일 전망이다.
회사의 대표이사만 아는 상태에서 회사돈이 빼돌려지는 일이 외환위기 이후에도 재발되고 있음이 입증되기 때문이다. 이는 또 회계처리가 정상적으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현대상선은 현대그룹의 사실상 지주회사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충격이 더할 전망.
돈이 북한 지원에 쓰였을 경우에도 법률적으로는 현대상선이 산업은행에 상환할 책임을 진다. 그러나 이 경우 문제가 정치 이슈로 비화해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이 끈질기게 상환을 요청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이명재기자 mj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