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엄호성(嚴虎聲) 의원은 26일 국회 정무위 국정감사에서 “현대상선이 산업은행에서 빌린 4900억원이 북한 아태평화위원회가 외화벌이 목적으로 홍콩 마카오 베이징(北京)에 만들어 둔 페이퍼컴퍼니(유령회사)의 계좌에 들어갔다는 제보를 받았다”고 폭로했다.
또 전날 현대건설의 1억5000만달러(약 1800억원) 대북 비밀제공설을 제기했던 한나라당 이성헌(李性憲) 의원은 “현대건설이 2000년 5, 6월 홍콩 싱가포르에 부동산사업 명목으로 송금한 1억5000만달러는 6개 계좌로 나뉘어 북한에 들어갔다”면서 정상회담 전후의 대북 비밀지원액은 엄 의원이 밝힌 4억달러가 아니라 5억5000만달러(약 6700억원)라고 주장했다.
이 의원은 “송금 결정은 현대그룹의 실력자였던 이익치(李益治) 회장이 김재수(金在洙) 구조조정본부장에게 지시해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한나라당 서청원(徐淸源) 대표는 이날 기자회견을 갖고 “이번 사건은 정권이 재벌과 짜고 적의 전력 증강을 도운 명백한 이적 행위”라며 국회 차원의 국정조사 실시를 요구한 뒤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사건의 전모가 밝혀지면 남은 임기에 관계없이 즉각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민주당 한화갑(韓和甲) 대표는 기자간담회를 통해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후보는 전쟁을 원하는지, 평화를 원하는지 분명히 해야 한다”며 “근거없는 정치공세를 즉각 중단하라”고 반박했다.
민주당은 엄호성, 정형근(鄭亨根) 의원과 엄낙용(嚴洛鎔) 전 산업은행 총재를 검찰에 고발키로 했다.
한편 이근영(李瑾榮) 금융감독위원장은 이날 “엄 전 산은 총재가 ‘대북사업이 민간 차원으로만 이뤄진 일이 아니기 때문에 정부에서 도와 줘야 한다’는 취지의 김충식(金忠植) 현대상선 사장의 말을 ‘정부가 대출금을 대신 갚아 줘야 한다’는 말로 오해해 증언한 것 같다”며 엄 전 총재의 전날 증언 내용을 달리 해석했다.
또 산업은행측은 “현대상선에 지원한 4900억원은 유동성 위기에 대한 정당한 지원이었다”며 “현대상선으로부터 당좌대월 4000억원중 1700억원, 운영자금 900억원 가운데 100억원을 회수했으며 나머지는 현대상선의 자동차 선매각대금이 들어오는 대로 상환받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김동원기자 daviskim@donga.com
김승련기자 sr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