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빈은 논란 여지 많은 인물”…대만 일간지 보도

  • 입력 2002년 9월 26일 23시 34분


북한 신의주 특별행정구 초대 행정장관으로 임명된 양빈(楊斌·39) 어우야(歐亞)그룹 회장은 사업가에서 민주화운동가, 정치인으로 변신에 변신을 거듭해 논란의 여지가 큰 인물이라는 논평이 나왔다.

대만 일간 중국시보는 25일 ‘전기(傳奇)적 색채로 충만된 양빈의 일생’ 제하 기사에서 해외 중국어 인터넷사이트인 둬웨이왕(多維網)을 인용, 양 장관이 네덜란드의 명문 라이덴대 유학 시절인 89년 6·4 톈안먼(天安門) 사태가 발생하자 정치적 망명을 신청한 후 해외에서 한때 민주화운동에도 참여했으나 곧 돈벌이에 전념한 점 등을 들어 “논란의 여지가 큰 인물”로 규정했다.

네덜란드 정부의 망명 허용 후 스스로를 “네덜란드에서 활약한 민주화 인사”로 포장했던 그가 해외 민주화운동가 출신으로는 이례적으로 귀국 후 고위 당정 간부들과 교유하며 사업가로 급성장한 것도 이 같은 분석을 뒷받침한다는 것.

장쑤(江蘇)성 난징(南京) 출신인 그는 동북부 랴오닝(遼寧)성 소재 해군 제2포병학원(포병대학 격) 졸업 후 모교에서 정치학을 강의한 경력 등을 활용해 보시라이(薄熙來·현 랴오닝 성장) 다롄(大連)시장 등 고위 간부들과 밀접한 교유 관계를 유지하며 사업 발판을 마련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보시라이 시장은 당 8대 원로 중 유일한 생존자인 보이보(薄一波) 전 국무원 부총리의 아들로 후진타오(胡錦濤) 국가부주석에 이어 중국을 이끌어 갈 제5세대 그룹의 선두 주자다.

라이덴대에서 그를 가르쳤던 하버드대 정치학과의 토니 사이치 교수도 중국경제지인 위안둥(遠東) 경제평론과의 회견에서 양 장관에 대해 “목적 달성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인물”로 폄하했다.

일례로 그는 중국 해외 민주화운동 네덜란드 지부 주석직을 맡았으나 얼마 되지 않아 민주화운동가들과 관계가 소원해지고 돈벌이에만 전력했다는 것.

양 장관은 또 네덜란드의 온실 설비를 중국에 수출해 짧은 시간에 중국 온실설비 시장의 90%를 장악하는 한편 중국의 저가 공산품을 동유럽에 팔아 막대한 이윤을 남겼다는 부정적인 평가도 받고 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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