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00억 北지원설 쟁점]"대책논의했다면 산은총재는 왜 참석했나"

  • 입력 2002년 9월 27일 18시 54분


현대계열사를 통한 정부의 ‘4억달러(약 4900억원) 대북 지원설’이 제기된 뒤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공방이 격화되고 있지만 진상은 아직도 오리무중인 채 의혹만 갈수록 커지고 있다. 한나라당 민주당 현대그룹 등 당사자가 대립하고 있는 쟁점을 정리해 본다.

▽반발인가, 넋두리인가〓대북 비밀지원설은 엄낙용(嚴洛鎔) 전 산업은행 총재가 25일 국감 증언에서 “김충식(金忠植) 전 현대상선 사장이 2000년 8월말 ‘6월에 대출받은 4900억원은 우리가 손도 못 댔다. 정부가 갚아야 한다’고 말했다”고 밝히면서 불거졌다.

특히 “김 전 사장의 말을 청와대 별관에서 열린 회의에서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 재경부장관 등에게 보고했고, 그 이후 김보현(金保鉉) 국가정보원 대북담당 3차장에게도 전했다”는 엄 전 총재의 증언이 의혹을 증폭시키고 있다.

엄 전 총재가 참석한 청와대 회의는 8월22일 열렸으며 공식의제는 ‘추석 자금안정 대책회의’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의제와 별로 상관이 없는 엄 전 총재가 참석한 것으로 보아 현대그룹에 대한 추가지원문제가 논의됐을 것으로 보인다. 통상 장관들만 참석하는 청와대 회의에 국책은행 총재가 참석한 것도 이상하고 대북담당 3차장에게 김 전 사장의 상환 거부 발언을 전달한 것 자체가 북한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라는 게 한나라당의 주장이다.

그러나 민주당은 김 전 사장의 넋두리를 엄 전 총재가 오해했다며 평가절하에 나섰다. 즉 현대상선 자금사정이 나빠지자 “금강산 사업의 최대수혜자는 정부인데, 아무 도움도 주지 않는다”는 뜻으로 푸념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 문제는 국감 증인으로 채택됐으나 병을 치료하러 간다며 출국해 미국에 머물고 있는 김 전 사장이 귀국, 엄 전 총재와 나눈 대화 및 대출금을 어떻게 처리했는지를 털어놔야 밝혀질 것으로 보인다.

▽4900억원의 사용처는〓한나라당은 27일 “현대상선이 산업은행 3개 지점에서 1000억원짜리 2장과 2000억원짜리 1장으로 쪼개서 수표로 인출한 뒤 국정원에 전달했다”며 전날 주장을 구체화했다. 4900억원이 현대상선의 운영자금이 아닌 대북지원용으로 쓰였다는 것이다.

반면 현대상선은 빌린 돈은 용선료 1506억원, 선박건조 상환금 645억원 등 4900억원 전액을 회사를 위해 썼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이를 증빙할 만한 자료를 제시하지 않고 있다. 현대상선은 또 1800억원을 이미 갚았고, 나머지도 다음달 상환할 계획인 만큼 ‘정부가 대북 비밀 지원에 사용했다’는 주장은 말이 안 된다고 일축하고 있다.

민주당과 현대상선은 또 “4900억원을 북한에 뒷돈으로 건네려면 산업은행의 시설자금 등 3년이상 장기자금을 활용하지 3개월짜리 초단기 자금을 동원하겠느냐”고 반박했다.

그러나 폭로 당사자인 한나라당 엄호성(嚴虎聲) 의원은 “계좌추적을 하면 현대상선이 한 해명의 진위를 금방 가려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같은 당 정형근(鄭亨根) 의원도 “계좌추적을 하면 4900억원의 행방은 바로 드러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정부는 ‘금융감독위원회는 개별기업의 자금 흐름을 조사할 수 없다’며 계좌추적과 사실 확인에 난색을 표시하고 있다. 금감위가 현대상선의 회계장부에 대한 감리를 하고 있지만 이를 통해 4900억원의 행방이 밝혀질지는 의문이다.

김승련기자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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