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상선 의혹]高利 4000억 왜 한번에 찾았나

  • 입력 2002년 10월 1일 19시 06분


현대상선이 2000년 6월7일 산업은행의 당좌대월 4000억원 승인이 나자마자 모두 뺄 만한 사용처가 따로 있었던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일고 있지만 현대상선은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현대상선에 대한 회계감사를 맡았던 삼일회계법인은 결산보고서와는 달리 반기보고서는 기업이 제출하는 자료만으로 검토했다고 밝혔다. 따라서 현대상선이 민감할 수 있는 회계자료를 제시하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다.

▽인출한 4000억원의 사용처는〓현대상선은 산업은행에서 한꺼번에 4000억원을 다 빼냈지만 이 돈을 약 2개월에 걸쳐 사용했다.

현대상선은 산은에서 빌린 대출금으로 2000년 6월7일부터 8월말에 걸쳐 선박용선료(1500억원), 선박건조 관련 상환금(590억원), 기업어음(CP) 매입(1740억원), 만기 회사채 매입(170억원) 등에 사용했다.

따라서 현대상선이 4000억원을 인출할 당시에 이를 한꺼번에 쓰지 않으면 안될 급박한 용처(用處)가 있었던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생긴다. 왜냐하면 당좌대월은 금리가 상대적으로 높고 약정한도 안에서 언제든지 찾아쓸 수 있는데도 현대상선이 한꺼번에 빼냈기 때문이다.

▽회계자료 허위 제출 가능성〓현대상선의 2000년 반기보고서의 주석(註釋)에는 은행권으로부터 받은 당좌대월약정한도가 4415억원으로 기재돼 실제보다 약 3000억원이 누락됐다.

당시 보고서를 검토한 삼일회계법인은 약 3000억원이 누락된 반기보고서에 대해 ‘반기재무제표 준칙에 위배되는 사항 없음’이라는 검토 의견을 냈다. 삼일회계법인의 관계자는 “반기보고서는 기업이 작성한 보고서와 기업이 제출한 자료를 확인하고 지난해에 비해 특이 사항이 있는지를 점검하지만 수치 자체의 허위성은 파악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현대상선이 일시당좌대출한도 약정액을 줄여 기재한 후 법인인감 사용대장 등 이를 확인할 수 있는 근거 자료도 불충분하게 제출했을 가능성이 있는 것.

2000년 12월 연말 보고서에는 사라졌던 3000억원이 다시 나타났으며 ‘적정’ 회계 감사 의견을 받았다.

▽묵묵부답인 현대상선〓대북 비밀지원설에 휘말려 있는 현대상선은 회계장부 공개 요구에 응하지 않고 있다. “대북지원은 사실무근이며 일일이 대응해봐야 또다른 빌미만 제공할 뿐이기 때문”이라는 주장.

현대상선 관련 프로젝트를 맡은 적이 있는 컨설팅 업계의 한 관계자는 “현대상선의 장부에는 현금흐름이 하도 복잡하게 얽혀 있어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고 말했다.

현대상선은 2000년 당시 부도위기에 시달리던 현대그룹 계열사 가운데 ‘현금 동원이 가능한 거의 유일한 회사’여서 전체 계열사에 대한 자금공급창구 역할을 했다. 2000년 상반기에만 해도 현대아산 현대중공업 현대건설 등에 4000억원에 가까운 돈이 넘어간 것.

이같은 지원의 부당성을 지적하던 김충식 전 사장은 현대그룹 측과 심각한 갈등을 빚었고 결국 사임했다.

정몽헌 회장 관련설도 제기된다. 현대상선을 통해 계열사를 지배하고 있는 정 회장과 관련된 사안을 밝히기 곤란해 장부를 공개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결국 장부를 공개할 경우 회사 기밀이 드러나므로 아예 ‘묵묵부답’ 작전을 선택했다는 분석이다.

김상철기자 sckim007@donga.com

이명재기자 mj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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