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전 실장은 6일 기자회견을 자청해 엄 전 총재의 증언을 정면으로 반박하면서 “허위 사실을 말한 엄 전 총재를 7일 중 명예훼손으로 검찰에 고소하고 악의적이고 편파적인 보도를 한 언론사에 대한 법적 대응도 신중히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한 전 실장 발언과 엄 전 총재의 증언 비교〓한 최고위원은 이날 회견에서 “대통령비서실장 1년10개월을 하는 동안 은행 대출건과 관련해 어떤 은행에도 압력을 넣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한 최고위원은 이어 “내 양심과 인격을 걸고 그런 사실이 없다. 내 말이 거짓이라면 정치를 하지 않겠다”고 못박았다. 그는 또 “경제장관 간담회에서 4000억원 대출문제가 논의됐다는 사실도 몰랐다. 현대상선에 4000억원이 대출됐는지도 몰랐다”며 자신의 대출 개입설을 강력하게 부인했다.
그러나 엄 전 총재는 4일 산업은행에 대한 재정경제위 국감에 증인으로 출석해 “취임 직후 ‘현대상선 4000억원 대출이 걱정스럽다’고 이근영 금융감독위원장을 찾아가 얘기하자 이 위원장은 ‘상부지시여서 어쩔 수 없었다. 한 실장이 전화를 했다’고 말했다”고 증언했다.
이처럼 두 사람의 증언이 180도 어긋남에 따라 실체적 진실은 법정에서 가려질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엄 전 총재와 이근영 금감위원장 면담의 진실은〓엄 전 총재의 국감 증언은 이 위원장과의 면담 내용에 근거를 두고 있다. 2000년 8월 17일 엄 전 총재가 산은 총재에 취임한 후 전임 총재였던 이 위원장을 만나 “현대상선에 대한 4000억원 대출이 걱정스럽다”고 운을 떼자, 이 위원장이 ‘상부 지시’임을 강조했고, 당시 한 실장이 전화를 해서 어쩔 수 없었다고 말했다는 것이 엄 전 총재의 증언이다.
실제 이 문제는 엄 전 총재와 이 위원장을 동시에 불러 대질심문을 하면 간단히 풀릴 수 도 있는 사안이다.
그러나 엄 전 총재는 “대질 심문에 응하겠다”는 입장인 반면 이 위원장은 “용의는 있지만 선후배간 얼굴을 붉히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고 우스운 꼴이다”며 거부했다. 엄 전 총재는 4일 “나는 사실을 말할 뿐이며 내가 한 말에 대해서는 법적인 책임을 지겠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최영해기자 yhchoi65@donga.com
정용관기자 yonga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