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켈리 미 대통령 특사의 평양 방문에도 불구하고 북-미 양측은 대량살상무기(WMD) 등 핵심현안에 대한 의견접근은 물론이고 향후 회담일정조차 잡지 못했다. 남북관계를 비롯한 한반도 정세가 상승기류를 탈 수 있는 기회가 ‘일단 유보’된 셈이다.
이에 따라 2차 북-미회담 일정은 미국과 북한이 이번 회담의 결과를 토대로 내부적인 입장 정리를 끝낸뒤에야 윤곽을 드러낼 전망이다.
미국은 한미일 대북정책조정감독그룹(TCOG) 회의를 통해 향후 북-미대화 재개 시기와 방식 등을 최종 확정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국제원자력기구(IAEA)를 통한 대북 핵사찰을 시급한 사안으로 강조하고 있는 만큼 미국이 후속회담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미국의 대 이라크 전쟁 여부와 11월에 진행될 중간선거 등의 빡빡한 일정을 감안한다면 미국이 북-미대화에 속도를 내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북한으로서도 시간적인 여유가 많지는 않다.
12월 한국의 대선이후 정권이 교체된다면 남측의 대북화해정책 추진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없지 않다. 북한은 자신들의 변화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현 정권의 임기가 남아있는 동안 대외관계에서 발생하는 각종 문제를 정리해두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판단하고 있다. 현재 진행중인 경제개혁이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도 그렇다.
다만 켈리 특사가 돌아간 직후인 6일 북한 평양방송이 “수많은 WMD로 인류에게 커다란 위협을 주며 미사일과 그 기술을 대대적으로 수출하여 큰 돈벌이를 하고 있는 것은 미국”이라며 노골적으로 대미 적대의식을 드러낸 것은 예사롭지 않다.
그러나 1차 북-미회담이 확실한 합의사항을 이끌어내지 못했고, 양측이 ‘인식차이’를 강조하고 있다는 이유로 북-미관계를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는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이번 회담의 수석대표인 켈리 차관보가 실무자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당초부터 이번 회담에서 정치적인 타결을 기대하기는 어려웠다는 평가다.
외교안보연구원 김성한(金聖翰) 교수는 6일 “북한이 미국 특사를 통해 미국의 의견을 청취했다는 점에서 앞으로 군부와 당의 내부적 의견조율을 본격화할 것”이라며 “앞으로 협상 레벨이 높아지거나 기회가 마련된다면 북한의 본심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향후 북-미관계를 비롯한 한반도 정세는 양측이 이번 회담을 통해 확인한 인식차이를 어떻게 좁혀나가고, 어떻게 대화를 이어가느냐에 달려있다는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김영식기자 spea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