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개혁법안은 그해 1월 정부가 설치한 금융개혁위원회가 5개월여의 작업 끝에 내놓은 것으로 금융산업의 구조조정을 위한 제도 정비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외환위기의 원인이 됐던 낙후된 금융시스템의 대수술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정부는 그해 8월 이 법안을 국회에 제출한 뒤 정기국회에서만큼은 처리해 달라고 강력히 요청했다. 그러나 13개 법안 중 한국은행법 개정안과 금융감독위 설치법안 등 2개 법안을 둘러싸고 재경원과 한국은행, 금융감독기구간의 조직이기주의가 첨예하게 맞섰고 대선을 의식한 여야 정치권의 눈치보기로 계속 표류했다. 금융노조의 반발을 샀던 2개 법안은 금융개혁의 본질과는 별 관련이 없는 감독권한의 귀속문제였다.
야당이었던 국민회의와 자민련은 법안 통과를 반대하는 금융노조의 ‘표’를 의식해 반대하고 나섰다. 여당이었던 신한국당 역시 단독처리를 강행할 경우 96년 말 노동관계법 날치기 처리 때처럼 나중에 책임을 뒤집어 쓸 수 있다며 소극적이었다.
심지어 정기국회 막판인 11월14일 국회 재경위 전체회의에서는 신한국당이 단독처리를 시도했으나 일부 소속 의원들이 대선 행사에 참석, 법안 통과에 필요한 정족수를 채우지 못해 표결을 못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정식으로 요청하기 4일 전인 11월17일 여야는 회기 종료를 하루 앞두게 되자 논란이 많은 2개 법안을 제외하고, 나머지 11개 법안을 우선처리하려 했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결국 이들 법안은 대선이 끝난 뒤 IMF의 요구에 따라 재소집된 연말 임시국회(12월29일)에서야 통과됐다.
98년 IMF 사태의 책임론이 대두하자 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측은 “정치권이 금융개혁법안을 제때에 처리해주지 않아 외환위기가 초래됐다”고 비난했다. 전문가들은 금융개혁법안이 뒤늦게 처리된 것이 외환위기의 직접적 원인은 아니었다고 해도 대외신인도 추락에 적지 않은 악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이라고 말한다.김정훈기자 jng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