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선거개혁이란 ‘총론’에는 각 정파가 이의가 있을 리 없다. 실제 한나라당 서청원(徐淸源) 대표는 8월 임시국회 대표연설에서 “국회에 정치혁신특위를 구성해 정치개혁을 추진하자”고 제안했고, 민주당 한화갑(韓和甲) 대표도 9일 정기국회 대표연설에서 “선관위 안을 토대로 법 개정작업에 나서자”고 강조했다. 그러나 당리당략에 발목이 잡혀 선거개혁에 대한 이들의 다짐은 공수표가 될 가능성이 크다.
▽정쟁에 발목잡힌 선거개혁〓12월 19일 대통령선거를 새 선거법으로 치르려면 늦어도 이달 28일까지는 법 개정작업을 마무리해야 한다. 이날부터 무소속 후보자의 후보등록을 위한 추천장 교부를 하면서 사실상 후보등록 작업을 시작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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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과 민주당은 8월말부터 몇 차례의 총무회담에서 선관위가 7월 제안한 선거관계법 개정 시안에 관한 논의를 위해 정치개혁특위 구성문제를 논의했으나 서로 자기 당이 위원장을 맡아야 한다고 옥신각신 입씨름만 계속했다. 지난달 17일 3당 총무회담 때에는 민주당측이 “정 그렇다면 위원장을 자민련에 맡기자”고 제안했으나 한나라당이 거부했다. 이후에는 논의 자체마저 중단됐다.
더욱 한심한 대목은 4월초 자민련 김학원(金學元) 의원이 선관위 안에 근접한 법 개정안을 이미 마련해 3당 원내총무와 정책위의장 등 당 지도부의 서명까지 받아 법안을 발의했는데도 이마저 6개월째 낮잠을 자고 있다는 점이다.
정치권이 정쟁에 몰두해 있는 동안 선거개혁은 10여일 후면 물 건너 갈 위기에 빠졌다.
▽당리당략에 맞아야 ‘개혁’〓양당이 국회 특위위원장 자리를 놓고 한치의 양보없이 맞서고 있는 것은 새로운 게임의 룰을 만드는 데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겠다는 속셈 때문이다. 선관위 안에 대한 양당의 태도에서도 그런 계산은 그대로 드러난다.
우선 선관위가 고비용 정치를 해소하기 위해 제시한 정당연설회 전면 폐지와 대통령후보의 거리유세 금지방안에 대해 한나라당은 대통령후보와 유권자가 직접 접촉할 기회를 박탈해선 안 된다는 명분으로 반대하고 있다. 그 바탕에는 득표에 유리한 현정부 비판방법을 없앨 수 없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선관위 안에 가장 적극적인 민주당 노무현(盧武鉉) 후보측은 자원봉사자의 자발적인 단체 구성을 허용하는 ‘서포터스’ 운동의 활성화를 요구하고 있다. 노 후보의 팬클럽인 ‘노사모’나 선대위 산하의 ‘국민참여운동본부’의 활동을 합법화해 달라는 얘기다. 그러나 선관위는 자원봉사를 악용한 불법선거운동이 난무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 부정적이다.
▽단물만 빨아먹겠다?〓선관위는 선거개혁안을 그대로 시행할 경우 후보자 1인당 184억원의 비용을 줄일 수 있어 43억여원 정도면 선거를 치를 수 있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대선기간 중 총 315회를 열 수 있는 정당연설회를 폐지하면 후보자 본인이 부담하는 조직선거비용은 크게 줄어드는 반면 공영제 확대로 국고에서 부담해주는 비용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그런 혜택을 주는 대신 선관위는 정치자금의 규모축소 및 투명화를 위해 선거보조금 폐지와 100만원 이상 정치자금 기부자의 인적사항 공개를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정치권은 ‘단물은 빨아먹고 부담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이율배반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공영제 확대에는 한목소리로 찬성하면서도 그 반대급부로 제안된 개혁방안에 대해서는 “현실을 모르는 얘기다”며 반대하고 있다.
한나라당 정치개혁특위 간사인 허태열(許泰烈) 의원은 “중진의원들마저 초선의원들처럼 하향평준화될 수 있다”며 반대했다. 민주당 정치개혁특위는 한술 더 떠 “정치자금의 투명화를 위해서는 후원금 모금 한도액을 높이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펴고 있다.
김호열(金弧烈) 중앙선관위 선거관리실장은 “적잖은 국민 세금을 선거공영비용으로 갖다 쓰려면 정치권도 허리띠를 졸라매겠다는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며 “자기들 잇속만 챙기겠다고 할 경우 누가 동의하겠느냐”고 말했다.
김정훈기자 jnghn@donga.com
▼각론별 양당 입장차이▼
선관위가 제시한 선거관계법 개정의견에 대해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선거공영제 확대라는 취지에는 찬성하면서도 ‘각론’에 들어가서는 차이점을 드러내고 있다.
우선 고액 정치자금 기부자와 기부금액을 공개하는 방안에 대해 한나라당은 ‘정치현실을 무시한 발상’이라며 반대하고 있지만, 민주당은 그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다.
공영제를 확대하는 대신 대선·총선·지방선거 때 지원해온 수백억원의 선거보조금을 끊겠다는 선관위 안에 대해서도 한나라당은 반대다. 선거비용 중 가장 큰 몫을 차지하는 조직가동비에서 공영제 혜택을 전혀 볼 수 없기 때문에 득보다 실이 많다는 판단 때문이다. 민주당은 명백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미디어선거를 확대하는 대신 정당연설회와 길거리 유세를 없애자는 선관위 안에 대해서도 한나라당은 반대다. 반면 민주당은 합동연설회와 정당연설회, 길거리 유세는 ‘동원에 의한 금권선거 가능성이 크다’며 폐지하자는 입장이다.
매수나 허위사실 공표 등으로 유죄 확정 판결을 받았을 경우 형량에 관계없이 당선을 무효화하도록 관련 조항을 대폭 강화하는 데 대해서는 양당 모두 입을 다물고 있다. 사실상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정치자금의 투명화 방안과 관련해서도 한나라당은 100만원 이상 지출시 수표나 카드 사용을 의무화하자는 입장인 반면 민주당은 당내 입장이 엇갈린다. 민주당 정개특위는 지출에 대해서는 별도의 제한을 두지 말자는 입장이다.
선거연령도 한나라당은 현행대로 20세, 민주당은 19세를 주장하고 있다.
한편 양당은 시간 부족을 이유로 이번에는 대선 관련 조항만 손질하자는 입장이어서 선관위가 제안한 중앙당 축소와 원내중심의 정당민주화 방안은 논의조차 안될 전망이다.
정치관계법 개정에 대한 선관위·한나라당·민주당 입장 비교 | ||||
제 도 | 현 행 | 선관위 | 한나라당 | 민주당 |
합동 신문광고 | 없음 | 5개 정책분야별 6회씩 합동광고, 비용은국가부담 | 취지에 찬성 | 취지에 찬성 |
후보 신문광고 | 70회(비용은선거후 보전) | 80회(국가부담 40회, 사후보전 40회) | ||
후보 방송광고 | TV·라디오 각 30회(비용 선거후 보전) | TV·라디오 각 100회(국가부담 50회,사후보전 50회) | ||
후보 방송연설 | 후보와 연설원 각각TV 11회, 라디오 11회(후보만 보전) | 후보 22회 국가부담, 연설원 22회 사후보전 | ||
TV합동연설회 | 없음 | 선거방송 연설 토론위원회 주관 전국 3회 | ||
TV 대담 및 토론 | KBS MBC 주관3회 이상 | 선거방송 연설 토론위 주관 3회 이상 | ||
정강정책 신문광고 | 정당부담 50회 | 교섭단체 경우 25회는 국가부담, 25회는정당부담 | ||
정책토론회 | 없음 | 교섭단체 대상 월1회 이상 개최 의무화 | ||
정당연설회 | 시·도별 2회, 구·시·군별 1회 | 폐지 | 필요함 | 폐지 |
확성기 이용후보 거리연설 | 무제한 허용 | 폐지 | 허용 | 폐지 |
정치자금 수입지출 | 제한규정 없음 | 100만원 초과 모금시 수표사용 의무화,50만원 초과 지출시 수표 카드 의무화,정치자금 입출금시 신고된 단일계좌 사용 | 기준을100만원으로 통일 | 당내 의견엇갈림 |
정치자금 기부자 공개 | 미공개 | 1회에 100만원 이상 및 연간 500만원이상 기부자의 인적사항 및 기부금액 공개 | 공개 반대 | 필요성 인정 |
선거보조금 | 대선·총선시 유권자 1인당 800원씩, 지방선거시 유권자 1인당 1800원씩 지원 | 폐지 | 지급 유지 | 입장 없음 |
후원회모금한도 | 선거있는 해 2배 모금(국회의원 6억원) | 선거있는 해도 평년처럼 3억원 | 현행 유지 | 현행 유지,증액도 검토 |
대선후보 기탁금 | 5억원 | 20억원 | 20억원은너무 많음 | e=2>20억원은너무많음 |
윤종구기자 jkma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