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일 방북한 제임스 켈리 미국 대통령특사는 북한의 핵개발 사실을 확인한 뒤 곧바로 한국과 일본에 이 같은 사실을 통보했으나 한미 양국은 이를 즉각 공개하지 않고 극도의 보안을 유지해 왔다. 한미 양국은 26일 아태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 개최지인 멕시코 로스카보스에서 열리는 한미일 3국 정상회담에서 협의한 뒤 북한의 핵개발 시인 사실을 공식 발표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최근 미국 USA투데이가 관련 내용을 보도할 것이라는 정보가 입수돼 어쩔 수 없이 서둘러 공개하게 됐다는 후문이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미국도 핵문제 해결이 목표인 만큼 당분간 비공개 원칙 아래 북한과 협상할 예정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측도 로스카보스 한미일 3국 정상회담 때까지는 3국간에 계속 내부협의만 할 생각이었던 것 같다”며 “미국 정부도 보안 유지가 깨진 데 불만을 갖고 있다”고 덧붙였다. 특히 켈리 특사의 방북 이후 북한 선수단이 참여한 부산아시아경기(9월29일∼10월14일)가 개최되고 있었던 점을 감안해 북한 핵문제의 쟁점화를 다소 늦추는 게 바람직하다는 공감대가 한미 양국에 있었던 것 같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서울의 한 외교소식통은 “조지 W 부시 공화당 행정부는 대북 강경책을 펴고는 있지만 자신들이 한반도의 화해협력 분위기에 훼방꾼으로 비치는 것에 대해서는 큰 부담을 갖고 있다”고 전했다.
반면 일부 전문가들은 “미국 정부 내 일부 대북 강경파가 언론에 북한의 핵개발 시인 사실을 흘려 공개 시기를 의도적으로 앞당겼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켈리 특사의 방북 이후 일어났던 상황을 돌이켜보면 한미간에 그동안 내부 의견 조율이 충분히 이뤄지지 못하지 않았느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켈리 특사는 방북 후 서울에 들러 “이번 방북을 통해 북-미간 추후협상이 결정되거나 합의된 것은 없지만, 워싱턴으로 돌아가 회담 결과를 검토한 뒤 한일 양국과 협의를 거쳐 추후 어떤 조치를 취할지 최종 결정할 것”이라는 요지의 간단한 성명만 발표했다.
이에 대해 정부 당국자는 “(켈리 특사의 방북은) 북-미간 문제 해결의 첫걸음을 내디딘 것”이라며 “여러 중요 현안에 대해 북-미 양측이 기탄 없는 의견 교환을 한 것을 매우 다행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부 당국자의 설명과 달리 켈리 특사의 방북결과는 ‘문제 해결의 첫걸음’이 아니라 ‘심각한 새로운 문제의 돌출’이었음이 드러났다.
부형권기자 bookum9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