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년 핵 위기'는 핵무기 원료인 플루토늄을 추출한 의혹에 대해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 요구가 거세지자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을 전격 탈퇴하면서 시작됐다. 94년 5월 북측이 이 의혹의 중요한 증거인 원자로 연료봉을 IAEA의 입회 없이 무단 인출하면서 위기가 고조됐다. 이 사태는 제네바 북미합의를 통해 일단락됐다.
이번 위기는 북측이 '농축 우라늄 핵 개발 프로그램'를 시인하면서 불거졌다. 북측이 끝까지 '평화적인 핵'이라고 주장했던 94년과 전혀 다른 상황이다. 즉각 핵무기 개발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핵 프로그램을 폐기하기 전에는 사태가 마무리되기 어렵다. 그러나 북측은 미측에 '체제 보장'을 요구하며 버틸 가능성이 크다.
94년엔 '의혹의 원자로 건설을 동결하고 핵 재처리를 포기하면 경수로와 대체 에너지를 제공하겠다'는 대타협이 이뤄졌다. 그러나 현 조시 W 부시 미 공화당 행정부는 "94년 방식을 되풀이하지 않는다"며 강경하다. 공화당은 94년의 제네바합의에 대해 "불량행동에 대가를 주는 나쁜 선례를 남겼다"고 비난해 왔다.
부시 행정부는 지난해 '9·11 테러'를 당했고, 올 초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평화적 해결'에 대한 기대와 전망이 나오는 것은 98년 '페리 프로세스' 이후 본격화된 한미일 3국의 대북 공조 체제 때문이다.
정부 당국자는 "94년에는 북미 대화만 있어 한국과 일본은 '귀동냥 외교'를 해야 했고 그 과정에서 불필요한 갈등도 많았다"며 "지금은 남북 북일 대화도 활발하고, 한미일 공조도 체계화돼 있어 문제 해결 채널이 다양해졌다"고 말했다.
부형권기자 bookum9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