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북한 핵개발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김대중(金大中) 대통령과 주요 대선후보들의 청와대 ‘6자 회동’은 진지한 분위기 속에 예정시간을 40분이나 넘겨 1시간40분 동안 진행됐다. 박선숙(朴仙淑) 대통령공보수석비서관은 “참석자 모두 열심히 메모하면서 발언을 경청하는 등 마치 세미나 같은 분위기였다”고 전했다.
이회창(李會昌) 노무현(盧武鉉) 정몽준(鄭夢準) 권영길(權永吉) 이한동(李漢東) 후보는 각자 발언할 내용을 메모해 봉투에 담아오는 등 철저히 준비한 모습이었다. 후보간에 차별화를 위한 논란과 신경전이 벌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없지 않았으나 후보들은 서로 “공감한다, 동의한다”는 등의 말을 주고받으며 회동을 이끌어갔다.
이날 회동에는 임동원(林東源) 대통령통일외교안보특보, 정세현(丁世鉉) 통일부장관, 임성준(任晟準) 대통령외교안보수석비서관 등이 배석, 대외비를 전제로 정보사항을 설명했다. 다음은 이날 대화록 요지.
▽이회창 후보〓기본방향은 북한의 핵문제는 반드시 평화적으로 해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대응전략에 관해서는 한미간, 한일간 협의가 중요하다. 대북 지원은 조절해야 한다. 지금까지처럼 계속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핵 제조비용으로 사용될 수도 있는 현금지원은 동결해야 한다.
남북의 대화창구는 이럴 때일수록 열어놔야 한다. 이번에 통일부장관이 평양에 가서 애썼지만 국민은 만족하기 어려울 것이다. 정보 공개 및 공유도 문제가 있다.
▽노무현 후보〓핵 문제를 남북대화의 주제로 삼지 않으려 해왔던 그동안의 북한 태도로 미루어 볼 때 이번에 남북장관급회담에서 협의의 주제로 삼고 공동보도문에 그와 같은 내용을 담은 것은 상당한 진전이라고 생각한다.
현금지원 동결이나 핵문제의 해결과 대북 지원을 연계하자는 주장이 있고 강경한 대북교류 중단 견해도 있다. 그러나 북-미 대화의 입장차가 너무 커서 잘 안 풀리고 있으므로 이럴수록 남북대화의 통로를 더욱 튼튼하게 열어두어야 한다.
▽권영길 후보〓북한의 핵개발이 포기돼야 한다는 확고한 입장을 갖고 있다. 제네바 합의의 중요한 대목에 대해서는 미국에도 책임이 있다. 2003년 경수로 완공 약속도 이행되지 않고 있으며 금융·경제제재 완화도 지켜지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요구하는 대로 먼저 북한이 포기해야 한다라는 것은 맞지 않다.
▽정몽준 후보〓북한의 핵개발에 관한 미국의 정보에 대해 정부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듣고 싶다. 북한 핵과 관련해 대화를 계속해 나가다가 난관에 봉착했을 때에 우리는 계속 대화를 주장하고 미국은 다른 수단을 모색하겠다고 하면 견해차를 어떻게 극복해 나갈 것인가. 국민은 그동안 햇볕정책의 성과 속에서 남북한이 진정한 대화상대라고 생각해 왔는데 핵문제를 계기로 북한이 진정한 대화상대인지 의구심을 갖게 된다.
▽이한동 후보〓미국이 일단은 평화적 해결과 대화의 원칙을 말하고 있지만 사실상 한반도에서 1953년 이후 최대의 안보위기 상황이 초래되는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하고 접근해야 할 것이다. 교류협력사업의 병행추진 문제가 있는데 국민들 사이에는 농축우라늄 개발계획을 북한이 시인하자 금강산 사업 등에 포함된 돈이 거기에 쓰이지 않았나 하는 의혹도 있다.
▽김대중 대통령〓정부는 어떤 일이 있어도 대량살상무기에 대해서는 그 위험이 완전하게 근본적으로 제거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현재 대책이 최종적으로 결정되지 않았고 이번에 멕시코에서 협의하게 된다. 지금까지 한미일 3국간에 이야기 된 것은 대화를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한다는 것이다.
청와대 6자 회동 내용 | |
의견 일치 사항 | 이견과 지적 사항 |
-북핵개발은 민족 생존에 관한 중대한 문제다 -핵개발은 용납될 수 없으며, 북한은 이를 즉각 포기하고 폐기해야 한다 -국제공조를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필요하다 -북핵개발 문제에 대해서는 초당적 대처가 중요하다 -북핵개발 문제 해결에 있어 남북대화 창구를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 -대북 현금지원 동결 등 남북교류 속도조절 필요하다. 북핵문제에 관한 정부의 정보공개와 정보공유 노력이 미흡하다(이회창 후보) -남북 교류협력은 오히려 강화해야 한다(노무현 후보) -북한이 진정한 대화상대인지 의구심 갖게 됐다(정몽준 후보) -미국에도 제네바 합의 이행을 요구해야 한다(권영길 후보) -금강산관광지원금 등 대북지원금의 핵개발 전용 의혹을 해소해야 한다(이한동 후보) |
윤승모기자 ysmo@donga.com
▼후보들 회동 평가▼
23일 청와대 ‘6자 회동’에 대한 대통령후보들의 평가는 엇갈렸다.
당초 대통령과의 단독회담을 요구했던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후보는 “핵문제에 대한 정치권의 초당적 협력에 공감한 것은 의미가 있었다”며 “그러나 충분한 논의보다는 각자 의견을 말하고 끝나는 모양이 돼서 아쉽게 생각한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한나라당은 특히 이 후보가 “핵문제 해결과 대북 지원을 적절히 연계하는 전략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으나 청와대에서 이 부분을 빼고 발표했다고 문제삼았다. 이에 청와대는 “정리과정에서 누락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전제했다”고 반박하며, 이 구절을 추가해 발언록을 다시 냈다.
민주당 노무현(盧武鉉) 후보는 “회동이 있기 전에 한두 후보께서 상당히 강경한 입장을 발표해 격론이 벌어질지 몰라 걱정했다”며 “그러나 부드럽게 대화가 오갔고, 북핵 문제로 인해 심각한 대결이나 국론이 분열되는 일이 생기지 않고 잘 풀어갈 수 있겠다는 기대를 갖게 됐다”고 평가했다.
국민통합21 정몽준(鄭夢準) 후보는 “북한 핵 파문이 심각한 사태라는 데 인식을 함께한 것이 성과였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그는 “(청와대 측에서) 북한에 대한 미국의 접근방식이 이라크에 대한 방식과 다르다고 해 나는 다른 게 아니라고 말했다”고 비판적 시각을 내비쳤다.
이한동(李漢東) 후보는 “북핵 문제를 정략적으로 이용해서는 안 된다는 데 공감대가 이뤄진 유익한 회담”이라고 했고, 민주노동당 권영길(權永吉) 후보도 “후보들이 국정 현안을 논의한 것 자체는 의미가 있었으나 북핵 문제에 관한 해법에서 큰 시각차를 보인 것은 유감이다”고 말했다.
정연욱기자 jyw11@donga.com
김정훈기자 jnghn@donga.com
이승헌기자 ddr@donga.com
▼회동 의미▼
정치권은 23일 청와대에서 열린 북핵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6자회동’에서 모처럼 초당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동안 정부의 대북정책에 비판적 태도를 취해왔던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후보가 이날 회동 후 “오늘 모임은 북한 핵 문제에 대해 정치권이 같이 걱정하고 초당적 협력에 공감했다는 점에 의미가 있다”고 평가한 것도 이날 회동의 성격을 반영한 대목이다.
실제 김대중(金大中) 대통령과 5명의 주요 대선 후보가 한자리에 모여 북핵문제에 대한 ‘공동 대응’을 논의했다는 사실이 갖는 상징성은 정치권이 국가적 과제에 공동보조를 취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점에서 평가받을 만하다.
특히 26일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 및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와의 한미일 3국 정상회담을 앞둔 김 대통령으로서는 북한 핵 문제에 대한 국제적 협의과정에서 한결 힘을 얻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날 6자회동에서는 또 ‘대북 거액 비밀지원설’ 등 여야간에 극단적 시각차를 보여왔던 대북 문제에 대한 인식을 전체적으로 정리해 일정부분의 공감대를 만들어냈다. ‘북한 핵 개발은 용납할 수 없지만 국제적 공조를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돼야 하며 남북한간 대화채널도 유지돼야 한다’는 이날 회동의 합의내용이 앞으로 정치권의 대북문제 논의과정에서 일종의 가이드라인이 되지 않겠느냐는 기대를 낳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나 정치권에서는 6자회동 결과가 현실 정치에서 작동하기에는 적지 않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우선 이날 회동에서 논의된 사항들은 ‘합의’ 형태로 명문화된 것이 아니어서 전혀 구속력을 갖지 못하기 때문에 일각에서는 이번 회동이 결국 일회성 이벤트에 그치고 말 것이라는 주장까지 나온다.
여기에다 총론적인 의견 일치와는 별개로, 각론에 들어가면 이견도 컸던 게 사실이다.
특히 이회창 후보가 제기한 ‘북핵문제와 대북지원과의 연계’ 문제는 향후 두고두고 논란의 불씨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이 후보의 연계 주장에 대해 민주당 노무현(盧武鉉), 민노당 권영길(權永吉) 후보는 반대입장을 분명히 해 대선후보간 토론에서도 이 문제는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윤승모기자 ysm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