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조사]신동아-KRC 대선후보 지지도·자질·업무능력 조사

  • 입력 2002년 10월 24일 16시 13분


자질은 이회창 업무능력은 정몽준

● 충청 민심이 관건, 노무현 이회창 정몽준 순서로 지지 옮겨

● 지역정서에 초연한 여론주도층, 수도권 40대 주목해야

● 이회창, 통찰력 등에서 선두. 도덕성은 바닥

● 정몽준, 경제선진화 해결할 후보로 기대, 판단력은 글쎄

● 노무현, 복지에는 강점, 경제·외교에서 낙제점

대통령 선거가 두 달 앞으로 다가왔다. 5년 단임의 현행 대통령제 아래에서 네번째 치러지는 이번 대선의 가장 큰 특징은 3김으로 대표되는 기성 정치인들이 나서지 않는 최초의 선거라는 점이다. 정치권을 지배하던 절대 카리스마가 없는 새로운 대결구도에서 누가, 어느 당이 기선을 제압할 것인가는 그래서 더욱 흥미진진한 관전 포인트다.

21세기 첫 대통령을 뽑는 국가적 행사지만 국민들의 반응은 미지근하다. 정권재창출과 정권탈환을 각각 목표로 내건 여야의 극한 대립에 오히려 염증만 느낄 뿐이다. 정치권은 바쁘지만 정작 표를 던질 유권자들은 마뜩찮은 표정이다.

‘신동아’는 창간71주년 특별기획으로 대선을 앞둔 민심을 읽기 위해 정밀 여론조사를 벌였다. 대선후보들에 대한 국민의 지지도 변화는 물론, 후보들의 경쟁력, 즉 ‘상품성’을 알아보는 것도 이번 조사의 목적이었다. 후보의 경쟁력은 자질과 업무능력 부문으로 나누어 진행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무관심한 척하지만 유권자들은 차분하고 냉정하게 후보들을 관찰하고 있었다. 정치권은 격한 대립과 갈등을 빚고 있지만 이들을 표로 심판할 유권자들은 침착하게 사태를 관망하고 있다는 것이다.

▼흔들리지 않는 표심▼

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최근의 폭로공방에도 민심은 흔들리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정치권의 폭로공방으로 세상이 떠들썩했음에도 한 달 전 실시한 여론조사와 비교해 후보들의 지지도에는 변화가 없었다.

현대상선 대출금의 북한 송금의혹을 제기했던 이회창(李會昌) 후보와 한나라당은 들인 노력에 비해 그다지 성과를 올리지 못했다. 이회창 후보 아들의 병역비리 의혹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 노무현(盧武鉉) 후보와 민주당도 이렇다할 반등 계기를 확보하지 못한 채 꽤 오랜 시간 지지율 바닥만을 확인하고 있다. 이들 두 정치세력의 틈새에서 독자행보를 해온 정몽준(鄭夢準) 의원도 이회창 후보와의 오차범위 내 열세를 뒤집을 만한 계기를 확보하지 못한 채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정쟁으로는 국민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무엇일까. 어떻게 해야 국민의 마음을 움직이고 표를 모으고 마침내 대선에 승리할 수 있을까. 각 후보진영은 지금 이 문제를 풀기 위해 골몰하고 있다. 그 해답은 멀리 있지 않다. 국민이 바라는 후보, 국민이 기대하는 경쟁력을 갖추고 이를 잘 홍보한다면 표를 모을 수 있다. 이 간단한 이치를 정치권이 모를 리 없다. 대선까지 남은 두 달, 과연 각 후보 진영은 얼마나 약점을 보완하고 강점을 극대화할 것인가.

제 1부 5자대결 구도 시 후보지지도 분석

이번 조사에서도 이회창 정몽준 양강(兩强)구도에는 변화가 없었다. 노무현 후보는 두 후보보다 10%이상 지지율이 뒤진 채 힘겨운 추격전을 벌이고 있다. 이회창 후보가 31.0%로 선두였고 정몽준 후보는 27.1%로 오차범위 내에서 이후보를 뒤쫓고 있다. 노무현 후보의 지지율은 14.7%였다.

이회창 정몽준 양강구도가 본격화된 것은 8월 이후다. 지방선거와 월드컵이 한창이던 지난 6월까지만 해도 정몽준 후보는 선두 이회창 후보보다 지지율에서 20% 포인트 뒤떨어졌다. 지난 6월15일 실시된 동아일보-코리아리서치 여론조사에선 이회창 후보가 36.0%의 지지율로 단연 선두를 달리고 있다. 2위는 노무현 후보로 22.9%, 정몽준 의원은 노후보에도 못미치는 15.3%로 3위였다.

그런데 월드컵이 끝나면서 정의원의 지지율은 급상승하기 시작했다. 8월10일 실시된 여론조사에서는 이회창 후보와 오차범위 내 접전을 벌이기 시작했다. 이후보가 30.8%, 정의원이 27.4%로 두 후보의 지지율 격차는 불과 3.4% 포인트였다.

▼‘二强一中’ 판세▼

9월 들어서도 정몽준 의원의 기세는 꺾이지 않았다. 9월7일 실시한 동아일보-코리아리서치 조사에서도 정의원은 29.5%로 30.2%의 이회창 후보를 턱밑까지 추격하며 위협했다. 9월17일 정몽준 의원은 마침내 대통령 선거 출마선언을 했다. 선거출마선언 직후 실시된 9월24일 조사에서도 32.0%(이회창)대 28.5%(정몽준)으로 14.4%의 지지율에 머문 노무현 후보를 제치고 두 사람만의 양강구도를 굳혀가기 시작했다.

이회창 정몽준이 앞서가고 노무현이 추격하는 이른바 ‘이강일중(二强一中)’의 판세는 이번 신동아-코리아리서치 조사에서도 그대로 이어졌다. 하지만 속내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표심에 미미하지만 의미있는 변화가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지역별로, 그리고 연령별로 일부 유권자층에서 지지후보를 바꾸는 선택의 변화가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역별 유권자의 민심변화에서 먼저 주목해볼 지역은 호남이다.

6월15일 조사를 보면 호남지역 응답자의 42.6%가 노무현 후보를 지지하고 있었다. 정몽준 의원을 지지한 응답자는 7.3%에 불과했다. 조사 당시 한국의 월드컵 16강 진출 가능성이 높아졌지만 정치인 정몽준 의원에 대해 호남사람들은 무심했다. 5월을 정점으로 노풍(盧風)이 가라앉으면서 노후보의 전국 지지율이 하락하기 시작했지만 당시까지도 호남 민심은 여전히 노무현에게 쏠려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추세는 8월초까지 이어졌다. 노후보는 8월10일 조사에서 호남에서 51.4%라는 압도적 지지를 얻었다. 그런데 이날 조사에서 두드러진 점은 정몽준 의원에게도 호남 유권자들이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정의원의 지지율이 6월 조사 때보다 3배 가까이 올라가 26.3%에 이르렀던 것이다. 이는 정의원의 전국 지지율(27.4%)에 육박하는 수치인데, 8월 이후 광주 전·남북 유권자들은 지지율 추락을 면치 못하는 노무현 후보 대신 정몽준을 주목하기 시작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9월7일 조사에서 정몽준 의원은 호남에서 25.3%의 지지를 얻어 답보상태를 면치 못했지만 9월24일 조사에서는 36.1%의 지지를 얻어 마침내 노무현 후보(30.6%)를 누르고 선두에 나섰다. 호남 민심이 새로운 대안으로 정몽준을 다시 보기 시작한 것이다. 10월8일 실시한 신동아-코리아리서치 조사에서도 호남 유권자의 정의원 지지율은 32.0%, 노무현 후보는 32.6%를 얻었는데 두 사람을 두고 호남 유권자들은 지금 장고(長考)에 들어간 것으로 해석된다. 지지후보 변경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광주 전라지역 응답자의 32.5%가 ‘바꿀 수도 있다’고 답해 다른 지역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수치를 나타냈다. 이 또한 호남이 아직 선택을 미루고 있음을 보여주는 지표다.

하지만 이번 대선에서 호남의 선택이 그다지 중요한 변수가 될 것 같지 않다. 코리아리서치 김정혜 부장은 “전체에서 호남 유권자 비중이 작아서 이번 대선에서도 그다지 중요한 변수지역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호남의 정서는 기본적으로 ‘반창(反昌)’으로 선거가 임박할수록 그 대상이 누구든 이회창 후보를 꺾을 후보 쪽으로 표 쏠림 현상이 나타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면 어딜까? 어느 지역의 선택이 이번 대선에서 승부를 가를 결정적 변수가 될까. 동아일보 나선미 여론조사전문위원은 “충청도의 선택이 중요한 변수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나위원은 “후보들의 지역연고만으로 볼 때 이번 선거에서 충청표가 갈 데가 없다. 대전과 충북은 사실상 김종필(金鍾泌) 자민련 총재의 정치적 영향권에서 벗어난 상태인데 어느 후보 쪽으로도 표심이 굳어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결국 어느 후보가 충청 유권자에게 어필하느냐가 이번 대선승리의 관건이라는 해석이다.

▼흔들리는 충청 민심▼

그러면 구체적으로 지난 6월 이후 충청 표심은 어떻게 변해왔을까. 지난 6월15일 조사 때 충청도의 절대강자는 이회창 후보였다. 그는 충청도에서 전국 지지율 36.0%를 상회하는 40.6%의 지지율로 1위를 차지했다. 충청연고가 강했던 이인제(李仁濟) 의원이 사실상 대선후보군에서 탈락한 뒤 무주공산(無主空山) 충청의 주인은 이회창 후보가 되는 듯했다.

그런데 상황은 곧 달라졌다. 두 달 뒤 실시된 조사에서는 정몽준 의원이 급상승, 이후보를 바짝 추격하기 시작했다(이회창 29.3%, 정몽준 28.0%). 마침내 9월7일 실시된 조사에서 충청지역에 관한 한 정의원은 이후보를 추월했다. 정의원이 29.7%, 이후보가 24.2%였다.

한번 정몽준 의원에게 쏠린 충청민심은 그 후로도 달라지지 않았다. 9월24일 조사에서 30.6%(이회창) 대 31.1%(정몽준)로 잠깐 대등한 양상을 보이더니 이번 신동아 여론조사에서는 22.2%대 26.0%로 정의원이 다시 이후보를 따돌리고 이 지역에서 지지율 1위 자리에 올랐다. 그러니까 노풍이 불었던 올봄 이후 충청민심은 노무현-이회창-정몽준으로 시시각각 그 지지 대상을 바꿔왔다.

그런데 눈길을 끄는 것은 충남 예산에 선영을 두고 있는 이회창 후보가 의외로 충청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나선미 위원은 “충청 주민들은 이회창 후보를 충청을 대표하는 정치인이라기보다 영남 후보로 인식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나라당이 영남을 기반으로 하는 정당이라는 인식이 충청표가 이후보에게 확 쏠리지 않는 이유라는 것이다.

하지만 충청도에서 1위를 달리고 있는 정몽준 의원도 지역구가 울산으로 충청과 별다른 연고가 없다. 한때 충청도에서 1위를 했던 노무현 후보도 연고가 없기는 마찬가지. 바로 이런 불확정성 때문에 충청민심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는 게 중론이다. 어느 누구도 확고하게 밀어줄 생각이 없다는 얘기다. 지지하는 후보가 명확한 영호남과 달리 부단히 표심이 흔들리는 충청도의 선택은 이번 대선에 결정적 영향을 끼칠 것으로 예상된다.

▼수도권 40대가 관건▼

충청민심만큼이나 오락가락하며 각 후보 진영을 혼란스럽게 하는 유권자 그룹은 또 있다. 바로 40대 연령층 유권자들이다.

지역주의가 기승을 부린 지난 대선 때까지, 연령별 유권자의 선택은 그리 중요한 고려사항이 되지 않았다. 젊고 나이 들고를 떠나 내 지역 사람에게 표를 몰아주는 쏠림현상이 웃지 못할 선거문화였던 것이다.

하지만 이번 대선에서는 영호남을 제외한 지역의 특정 연령층 유권자가 누구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여론이 움직이고 마침내 후보의 당락이 결정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문제의 특정 연령층’으로 40대의 선택을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선미 위원은 “지방의 40대는 여전히 지역정서에 따라 움직이는 반면, 수도권의 40대는 지역정서에 흔들리지 않는 세대다. 지방의 40대는 특정 후보에 대한 지지를 철회할 경우 아예 기권할 가능성이 높지만 지역정서에 영향을 받지 않는 수도권의 40대는 특정 후보에 대한 지지를 다른 후보에게로 옮길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그럴 경우 이들 수도권 40대의 표 이동은 후보들에게 두 배의 이익을 주거나 반대로 두 배의 타격을 안겨줄 수도 있다. 40대, 특히 수도권 40대의 마음을 누가 사로잡느냐에 이번 대선의 성패가 달려 있는 셈이다. 그런데 최근까지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40대는 끊임없이 흔들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올 봄, 노풍이 절정일 때도 그 주도세력은 40대였다. 이들이 노무현 후보에게 깊은 관심을 보이자 노풍이 일어났고 관심을 다른 곳으로 옮겨가면서 노풍이 잦아들었다. 그러면 지난 6월 이후 40대는 누구를 지지했고 누구에게서 기대를 거둬갔을까.

6월15일 조사에서는 이회창 후보가 40대의 압도적 지지를 받았다(40.6%). 노무현 후보와 정몽준 의원은 40대로부터 각각 17.2%, 18.7%의 지지를 얻는데 그쳤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회창 후보를 지지했던 40대가 정몽준 의원에게로 옮겨가는 양상을 나타냈다. 8월10일 조사에서는 33.4%(이회창) 대 28.4%(정몽준)로 지지율 격차를 좁히더니 9월7일 조사에서는 31.8%(이회창) 대 31.9%(정몽준)로 두 후보간 지지율 차이가 거의 없는 혼전양상을 연출했다.

그러던 것이 정몽준 의원이 대선출마 선언을 한 직후 실시된 여론조사에서는 정의원을 지지했던 40대들이 빠져나가는 반면, 이회창 후보를 지지하는 40대가 늘어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10월8일 실시된 신동아 여론조사에서는 32.8%(이회창) 대 27.6%(정몽준)의 지지율을 나타내고 있다. 현재 두 후보는 모두 자신의 전체 지지율과 비슷한 수준에서 40대의 지지를 얻고 있다. 따라서 40대에서 누가 우위를 쟁취하느냐는 곧 대선승리의 열쇠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김정혜 부장은 “정몽준 의원은 전체적으로는 지지율이 빠지지 않고 유지하고 있지만 지지층을 세분해서 보면, 40대 이상 지지자는 줄어드는 반면, 20, 30대 유권자는 늘어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정의원이 지금은 이후보와 대등한 대결을 벌이고 있지만 40대의 지지를 유지하지 못하면 어려워질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비토층도 두터운 이회창▼

빛이 강하면 그림자도 짙다고 했던가. 이번 조사에서 ‘당선되지 않았으면 하는 후보’, 즉 비토(Veto)후보로 이회창 후보가 18.4%로 가장 높은 ‘지지’를 얻었다. 이후보 다음이 노무현 후보로 5.9%, 이한동(5.5%), 정몽준(3.3%), 권영길(2.0%) 후보가 그 뒤를 이었다.

당선가능성 1위도 56.8%의 지지를 얻은 이회창 후보였다. 정몽준 의원이 11.5%, 노무현 후보가 5.4%로 그 다음이었다. 당선가능성이란 유권자들이 누구를 지지하건 관계없이 속으로 느끼는 선거판세를 알아보는 지표다.

이전의 조사와 비교해 이회창 후보와 정몽준 의원 두 사람의 당선 가능성은 올라갔으나 이회창 후보의 당선 가능성 상승폭이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비록 여론조사에서 이후보와 정의원이 오차범위 내 접전을 벌이고 있지만, 국민들은 이회창 후보에게 유리한 판세가 전개되고 있다고 느끼고 있음을 의미한다.

또 하나 대선판세를 읽을 수 있는 지표가 있는데 적극적 투표의사를 밝힌 응답자들의 후보 지지도다. 이번 조사에서 대선에 꼭 투표할 것이라는 의사를 밝힌 응답자는 전체의 67.4%였다. 이들 가운데 35.4%가 이회창 후보를 지지했고 26.0%가 정몽준 의원을 지지했다. 두 후보 사이의 지지율 격차는 9.4%포인트. 전체 지지율 격차 3.9%포인트 보다 그 간격이 더 벌어져 있다. 결국 이회창 후보 지지자들의 표 결집도가 다른 후보보다 앞선다고 볼 수 있다.

한편 대선출마를 선언했음에도 민노당 권영길(權永吉) 후보와 이한동(李漢東) 전 국무총리는 각각 1.6%와 0.9%의 지지를 얻는 데 그쳐 의미있는 지지를 끌어내지는 못했다.

하지만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민노당의 최근 약진을 근거로 “권후보는 지난 대선보다 더 많은 득표를 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반면 이한동 전 총리에 대해서는 “지지가 미미한 것은 국민들이 아직은 이 전총리를 대선주자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으로 풀이했다. 이 전총리의 경우 본격적인 대선국면에 접어들면 다른 후보와 합종연횡 과정에 출마를 포기할 수도 있다는 게 국민들의 판단이라는 것이다.

제 2부 자질평가부문

대통령 후보의 경쟁력은 크게 ‘자질’과 ‘업무수행능력’ 부문으로 나눠 물어보았다.

대통령 후보의 자질 부문 평가는 다른 조사와 연구기관의 자료를 참조해 후보의 경쟁력을 평가할 수 있는 대표적 항목을 선정하는 데 역점을 뒀다. 그 결과 통찰력과 판단력, 통합·조정능력, 추진력, 도덕성 등 4개 항목에 어느 후보가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가를 물어보았다.

개별적인 항목에 대한 후보들의 경쟁력을 묻는 질문과 별도로 응답자들에게 대통령으로서 갖춰야 할 자질과 관련, 4개 항목 가운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어보았다. 그 결과 ‘통찰력과 판단력(32.%)’에 답한 이가 가장 많았으며 다음으로 ‘도덕성(27.0%)’ ‘추진력(20.9%)’ ‘통합 조정능력(11.5%)’ 순으로 나타났다.

▼국민은 머리 좋은 대통령 원한다▼

지난 20년간 정치권은 한시도 부패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던 까닭에, 대통령의 자질로 도덕성이 으뜸으로 꼽힐 것으로 예상했으나, 뜻밖에도 응답자들은 통치권자로서 통찰력과 판단력을 대통령 후보의 중요한 자질이라고 답했다. 정치 지도자의 도덕성도 중요하지만 우리나라가 처한 각종 불리한 여건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두뇌회전이 빠르고 판단이 정확한 인물이 대통령이 돼야 한다는 게 국민들의 정서인 듯했다.

각각의 자질요인에 대해 어느 후보가 가장 뛰어나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서 이회창 후보는 도덕성을 제외한 통찰력과 판단력, 통합·조정능력, 추진력 등의 항목에서 다른 후보들보다 상대적 우위에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구체적으로 통찰력과 판단력에서는 38.7%의 응답자가 이후보가 다른 후보에 비해 뛰어나다고 답했다. 이후보는 통합 조정능력에서도 28.5%의 지지를 받았다. 추진력에서도 33.2%의 응답자가 이후보가 뛰어나다고 응답했다.

이처럼 도덕성을 제외한 통찰력과 판단력, 추진력, 통합부문에서 선두에 나선 것은 다른 후보와 달리 이후보가 지난 5년 동안 유력한 대권주자로 국민들의 뇌리에 각인돼 왔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후보의 강점은 다른 후보와 달리 자신의 지지자로부터 통찰력과 판단(78.7%), 통합 조정능력(66.2%), 추진력(71.9%) 등에서 높은 지지를 얻었다는 점이다. 이후보를 지지하는 응답자들은 마음속으로 그의 자질에 강한 믿음을 갖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도덕성 부문에서 빅3후보 가운데 가장 낮은 지지를 얻은 것은 이후보 진영에 적지 않은 부담이 될 것같다. 앞서 다른 자질 부문에서는 70% 전후의 지지율을 보이던 이후보 지지자들도, 도덕성에서는 54.4%만 이후보가 다른 후보보다 우월한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고 답했다. 노후현 후보 지지자의 67.6%, 정몽준 의원 지지자의 61.6%가 자신이 지지한 후보가 도덕성에서 경쟁력이 있다고 답한 것과 비교하면 이후보의 지지율이 상대적으로 낮음을 알수 있는데 이는 그동안 아들 병역문제, 빌라게이트 등으로 이후보가 적지않게 내상을 입어왔음을 보여준다.

정몽준 의원은 도덕성에서 24.9%의 지지를 얻어 이회창 노무현 후보보다 높은 점수를 얻었다. 이는 정의원이 다른 후보에 비해 노출이 덜 됐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4선 의원이지만 줄곧 무소속으로 지내온 까닭에 국민들에게는 아직도 ‘정치신인’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것. 즉 국민들은 정치신인 정몽준 의원이 도덕적으로 깨끗할 것이라 기대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의원은 응답자들이 가장 중요한 자질요인으로 평가한 통찰력과 판단력 부문에서는 노무현 후보(14.1%)보다 뒤진 11.7%의 지지를 얻어 이른바 ‘빅3’ 후보 가운데 가장 낮은 평가를 받았다. 왜 이럴까?

김정혜 부장은 “대선 출마선언 이후 정의원이 TV토론에서 패널들의 질문에 적절한 답을 하지 못하는 모습이 공개되자 상대적으로 달변인 노무현 이회창 후보와 비교되면서 통찰력과 판단력 부문에서 점수를 잃은 것 같다”고 풀이했다.

▼딱부러지지 않은 정몽준▼

한마디로 ‘딱 부러지는’ 이미지를 국민들에게 주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이런 이미지가 정의원의 전체 지지도를 올리는 데 불리하게 작용하지는 않은 것 같다”는 게 김부장의 설명이다. 자질 평가에서 뒤처졌던 정의원이 업무능력 평가에서는 다른 후보들보다 앞서는 것이 이를 잘 보여준다는 것이다. ‘딱 부러지는 맛은 없지만 일은 잘할 것 같은 인물’로 국민들에게 어필하고 있다는 얘기.

노무현 후보는 4개 항목에서 비교적 자신의 전체 지지도와 비슷하거나 상회하는 지지를 얻은 것이 위안거리다. 특히 도덕성 부문에서는 다른 항목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18.9%라는 지지를 얻었는데, 이는 자신의 전체지지 14.7%보다 높은 수치로 노후보는 국민들에게 비교적 도덕성이 높은 후보로 각인돼 있는 것으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봤을 때 노무현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분명치 않다는 것은 노후보 진영의 고민거리가 될 것 같다.

제3부 업무능력 부문 평가

대통령 후보들의 업무능력부문 경쟁력을 평가하는 항목으로 당장 우리나라 앞에 닥친 현안을 중심으로 6가지를 제시했다. 정치 안정, 남북관계 진전, 국제외교, 경제 선진화, 지역갈등 해소와 사회통합, 복지정책 추진능력 등이 그것이다.

그런데 눈길을 끄는 것은 대통령 후보의 여섯 가지 업무능력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한 응답자들의 답이다.

현재 진행중인 남북한 관계진전과 주변국과의 관계 등이 중요한 현안인 듯하지만 응답자들은 뜻밖에도 대통령 후보자들에게 다른 능력을 요구하고 있었다. 바로 정치안정이다. 37.5%의 응답자가 이에 답했다. 그 다음이 경제선진화로 34.6%. 정치와 경제 두 분야를 제외한 나머지에 대해서는 10%대 이하의 낮은 지지도를 나타냈다. 구체적으로 복지정책 추진능력이 7.5%, 사회통합이 5.8%, 국제외교가 4.6%, 남북관계 진전이 3.7%였다.

경제선진화 능력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그런대로 이해가 가지만 정치안정능력을 대선후보가 갖춰야 할 첫째가는 업무능력으로 꼽은 것이 이채롭다. 반면, 남북관계 진전 능력을 가장 낮게 평가한 것도 눈을 크게 뜨게 하는 대목이다.

김정혜 부장은 “국민들이 정쟁에 신물이 나 있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남북문제가 최하위 순위로 밀린 것에 대해서는 “중요한 문제이기는 하지만 현 정권 하에서 남북관계가 상당부분 진전됐다고 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그 중요도를 낮게 평가한 것같다”고 말했다.

업무능력부문 경쟁력 평가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정몽준 의원의 약진이다. 정의원은 국제외교(46.3%), 남북관계 진전(40.1%), 경제선진화(38.3%) 업무능력 부문에서 자신의 전체지지율(27.1%)을 크게 앞섰다. 국민들은 월드컵 유치 등에서 드러난 정의원의 외교감각에 높은 기대를 하고 있었고, 고(故) 정주영 회장 시절부터 주도해온 남북관계 개선에서도 그가 긍정적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다.

▼정당 때문에 손해본 이회창 노무현▼

또 현대중공업의 사실상 주인으로서 경제정책 운용에도 다른 후보들보다 강점을 갖고 있을 것으로 보고 있었다. 정의원은 이밖에 사회통합(25.2%), 정치안정(24.7%) 부문에서도 자신의 평균 지지율보다는 낮았지만 상대적 우위를 나타냈다.

이처럼 정의원이 전체 업무능력 부문에서 우세를 나타낸 데 대해 조사전문가들은 “실제 정의원의 능력을 검증한 결과라기보다, 여야 정당 소속 후보들보다 ‘잘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드러난 결과”라고 입을 모았다.

나선미 위원은 “노무현, 이회창 후보의 경우 소속정당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 탓에 업무능력 항목에서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회창 후보의 경우 정치안정 부문(24. 5%)과 복지정책 추진능력부문(21.3%)에서만 나머지 후보와 대등한 수준을 나타냈고 경제선진화(22.0%), 국제외교(20.9%), 남북관계진전(13.7%), 사회통합(17.8%) 등에서는 정몽준 의원에 비해 지지율에서 현저하게 뒤지는 것으로 나타나 눈길을 끈다.

이후보는 또 업무능력 관련 전체 항목에서 자신의 평균 지지율 31.0%에도 못미치는 지지를 얻어 업무능력에 관한 한 국민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정혜 부장은 “전체적으로 응답자들은 이회창 후보에 대해 대통령 후보로서 자질은 있으나 정책을 잘 운용할지는 모르겠다는 유보적 평가를 하고 것같다”며 “지금까지 한나라당은 청와대를 상대로 정치공세를 펼쳐왔지만 그 성과가 곧바로 이후보에 대한 지지로 연결되지는 않은 것같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후보의 지지율을 올리려면 지금부터라도 집권 정책을 공개해 정책정당이라는 이미지를 높여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노무현 후보의 경우 그 결과가 참담하다. 자신의 지지율(14.7%)보다 낫게 나온 것은 사회통합능력(17.6%)과 복지정책 추진능력(20.1%) 두 가지 뿐. 응답자들은 노후보가 국제외교(5.4%)와 경제선진화(7.7%) 능력에서 다른 후보에 비해 현저히 낮은 것으로 평가했다.

▼경제, 외교에서 낙제점 받은 노무현▼

노무현 후보의 지지도가 낮은 것을 감안하더라도 경제와 외교문제 해결능력을 낮게 평가한 것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난 3~4월, 거센 바람을 일으키며 유력한 차기주자로 떠올랐으나 바람이 급속히 가라앉은 배경에는 경제와 외교 분야의 전문적 식견이 부족하다는 국민들의 평가가 한몫을 했었다.

노풍이 가라앉고도 상당한 시간이 지난 최근까지도 노후보에 대한 국민들의 평가는 달라지지 않은 듯하다. 특히 경제 선진화능력에서 ‘빅3’ 후보임에도 7.7%의 지지를 얻는 데 그쳤다는 것은 노후보 진영으로서는 대단히 심각한 결과다. 현재 노후보는 빠른 속도로 민주당의 내분을 수습하며 본격적인 대선행보에 나섰다. 하지만 경제와 외교분야에서 능력을 갖췄다는 국민들의 평가를 받지 않는 한, ‘감이 아니다’라는 비판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같다.

3김의 영향력에서 벗어난 첫 대통령 선거라는 정치사적 의미는 이번 설문조사 결과에도 잘 나타나 있다. 한나라당과 이회창 후보에 절대적 지지를 보내고 있는 영남 일부를 제외하면 전체적으로 국민들은 후보의 자질과 능력을 냉정하게 평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회창 후보 지지자라 할지라도 도덕성에 관한 한 이후보에게 전폭적으로 높은 점수를 주지 않는 것이 그 대표적 사례. 김정혜 부장은 “특히 노무현 후보 지지자들이 이념적으로 진보적 성향을 띠고 있는데 그래서인지 노후보에 대한 평가도 냉정하다”고 말했다. 즉 노후보를 좋아하지만 모든 능력 면에서 노후보에게 높은 점수를 주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이처럼 정치인과 정치권을 바라보는 시각이 객관화돼 있다는 점에서, 다가올 대통령 선거는 특정 정치인에게 맹목적으로 표를 몰아주던 이전의 선거와는 분명 다른 양상을 보일 것이라는 분석이다. 지역연고나 선입관이 아닌 객관적인 평가를 하려는 유권자들이 있는 이상 어느 후보에게도 가능성은 열려있는 것이 이번 대선의 특징인 셈이다.

이번 여론조사 결과 세 명의 유력 후보는 자질과 능력면에서 각각의 특장점을 근거로 과 같은 포지셔닝을 해볼 수 있다. 이회창 후보가 ‘통찰력과 판단력’ ‘추진력’‘통합 조정능력’ 면에서 다른 후보보다 우위를 나타내고 있고, 정치안정을 이룰 능력 면에서도 비교우위에 있다.

▼이인제, 정몽준의 반면교사▼

한마디로 이후보는 다른 후보에 비해 ‘가진 것’이 많은 정치인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에 걸맞은 지지를 얻지 못했다. 풍부한 자질을 지지로 연결하지 못한 것이 한나라당과 이후보의 지금까지의 한계였고 앞으로 개척해야 할 영역인 셈이다.

정몽준 의원에 대한 평가는 상당부분 ‘기대심리’에 근거하고 있다. 기대심리 배경에는 새로운 인물이라는 평가가 깔려 있다. 정의원 역시 새로운 인물이 아니라는 평가를 받는다면 그 지지도는 급격히 낮아질 수 있다. 현재 국민들은 정의원이 만들 신당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 그의 신당이 대안세력으로 떠오른다면 지금보다 더 많은 지지를 얻을 수도 있다. 하지만 구태의연한 집단으로 낙인찍힌다면 지지를 철회할 유권자도 적지 않을 것이다.

1997년 대선 때 이인제 후보의 지지율 등락이 정의원에게는 반면교사(反面敎師)다. 국민신당 창당 직전까지 이인제 후보는 김대중 후보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2강이었다. 하지만 국민신당이 구정치인들의 집합소로 평가받으면서 지지율은 급락했다.

정의원 진영도 이 사실을 알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신당창당에 공을 들이고 있고 창당 행보도 더디다. 국민들은 이인제와 국민신당을 기억하고 있다. ‘새롭지 않은 정몽준’에게는 절대 표를 주지 않을 것이다.

노무현 후보는 총체적 난국이다. 15%대 지지율은 사실상 바닥권이다. 더 이상 떨어지지 않겠지만 특단의 대책이 없이는 회복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지난 8월 이후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이회창 정몽준 두 후보의 지지율은 일정한 수준을 유지한 반면, 노후보의 지지율만 유난히 떨어진 것도 회복가능성을 어둡게 하는 근거다. 국민들 머릿속에 ‘빅3’ 대신 ‘양강구도’가 굳어지기 전에 ‘수’를 내야 희망을 걸어볼 수 있다는 게 관전자들의 중론이다.

이번 대통령 선거는 장점을 알고 단점을 보완하면 누구에게도 당선 가능성이 열린 선거다. 하지만 대통령 자리는 하나다. 그래서 쉽지 않은 게임이다. 12월19일 누가 웃고 누가 눈물을 흘릴 것인가.

김기영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hade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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