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위기의 핵심은 북한이 제네바합의와 남북비핵화공동선언 등의 약속을 어기고 몰래 농축우라늄 방식의 핵무기 개발을 하고 있으며 그런 사실이 들통나자 마지못해 시인했다는 것이다. 위기 해소를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북한의 핵포기 선언이 필요하다고 우리가 여러 차례 강조한 것도 바로 그런 자초지종 때문이다. 그런데도 북한이 먼저 북-미 불가침조약을 체결해야 안보상의 우려를 해소할 용의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앞뒤가 뒤바뀐 억지가 아닐 수 없다.
북한이 미국을 위협적인 존재로 생각할 수는 있다. 그렇다고 해서 북한의 약속 위반과 핵개발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미국의 우려는 북한의 지속적인 대량파괴무기 개발과 수출, 자위 수준을 넘어서는 막강한 재래식 군사력 등 북한에도 책임이 있다는 것을 모른단 말인가. 북한이 진정으로 대화를 원한다면 선(先) 불가침조약, 후(後) 핵문제 해결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최소한 순서를 바꿔도 좋다는 성의를 보여야 한다.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자고 주장하던 북한이 북-미 불가침조약을 들고 나온 사실에도 유의해야 한다. 남한을 제쳐놓고 미국과 핵문제를 다루겠다는 의도가 분명하기 때문이다. 핵이 민족의 장래와 직결된 중대한 위협임에도 불구하고 북한을 비난하지도 못하면서 대화를 통한 해결만 강조한 정부가 이런 식의 ‘고립’을 자초했다.
정부는 사태를 직시하고 내일 열리는 한미일 3국 정상회담에서 결연한 합의가 도출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어정쩡한 입장을 견지하다 94년 핵위기 때처럼 협상테이블에서 제외되는 잘못을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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