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예산 중 ‘국가안전보장을 위한 활동경비’는 기획예산처 소관 ‘예비비’에 숨겨져 편성된 뒤 총액으로 예결산 심의가 이뤄져 국회의 예산심의권이 유명무실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국정원 실제 예산은 1조원 추정〓작년에 국회에서 통과된 2000년도 국정원의 ‘활동경비’ 결산액은 4047억원이었으며 특히 올해 심사된 2001년 활동경비는 총액조차 알려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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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은 기획예산처 예비비 외에도 국정원 본예산(2002년 2600억원)과 정부 각 부처 예산 중 ‘특수활동비’로 분류된 정보 예산의 절반 이상을 사용하고 있다.
국회 예결위 보고서에 따르면 96년부터 98년까지 국정원의 전신인 안전기획부는 정부 19개 부처에 흩어진 특수활동비 가운데 연평균 2000억원가량을 썼다.
따라서 기획예산처에 감춰진 국정원 소관 예비비, 본예산, 특수활동비 등을 합하면 국정원의 실제 예산은 연간 1조원에 가까운 것으로 추정된다.
문제는 예산 규모가 아니라 예산이 실제 목적에 맞게 쓰이는지를 국회가 실질적으로 심의할 수 없다는 제도적 맹점에 있다.
▽외국에는 없는 제도〓기획예산처 소관 예비비에 국정원의 ‘활동경비’를 끼워 넣는 관행은 1963년 제정된 ‘예산회계에 관한 특례법’에 있는 ‘안전보장을 위해 소요되는 예비비의 사용과 결산은 총액으로 하여 기획예산처 소관으로 한다’(2조)는 규정에 근거한 것이다.
그러나 예산 전문가들은 이 제도가 다른 나라에서는 보기 힘든 것이라 지적하고 있다. 장승우(張丞玗) 기획예산처 장관도 지난주 국회 예결위 답변에서 “정보기관 활동경비가 예비비에 감춰져 국회 예산심의를 받는 관행은 일본에는 없다”고 밝혔다.
국정원이 사용한 ‘예비비’는 다 쓰고 난 뒤 이듬해에 국회 정보위에서 심의받는 것이 전부. 하지만 올해는 정보위가 6개월간 구성조차 못하고 표류하다가 10월에야 간신히 문을 열었고 이후 도청 등의 쟁점에 밀리는 바람에 실질심사는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정보위에 제출되는 국정원의 예산 자료 자체가 부실할 수 있다는 점.
2000년 말 안기부 예산의 선거자금 전용 의혹이 제기됐을 때 김기섭 당시 안기부 운영차장은 검찰에서 “국회 보고 결산자료를 조작해 자금을 전용할 수 있었다”고 진술한 적이 있다.
김용기기자 ykim@donga.com